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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탱자'가 되어버린 스튜어드십 코드

김흥수 기자

기사입력 : 2019-07-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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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읽기’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환경단체 글로벌에코넷의 김선홍 상임회장은 플로어(FLOOR)토론에서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즉 ESG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 국민연금이 비재무성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을 통한 정보공개 요구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의를 던졌다.

이에 대해 답변에 나선 원종현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은 “사회적으로 지탄과 처벌을 받을 행위를 하는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과연 이것이 국민연금의 역할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국민연금이 이러한 개별의 모든 사건들에 대해 슈퍼맨처럼 등장해서 처리할 수 있다면야 쉬운 해결이 되겠지만 국민연금이 투자자로서의 수익성이 요구되는 현재 상황에서 기업에게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업무까지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궤변에 가까운 답변이 나왔다.

김선홍 회장은 국민연금 투자지분 10%가 넘는 KT&G의 환경폐기물처리 행위와 80명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30명의 암환자와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북 익산 장점마을 사건에 대해 KT&G가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북 익산 장점마을 사건은 마을 인근의 비료공장에서 2009년부터 2000여톤의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을 KT&G로부터 반입해 유기질 비료를 생산해 왔으며 환경부 역학 조사결과 담뱃잎 건조과정에서 발생하는 1급 발암물질인 TSNA(담배특이 니트로사민)가 검출된 사건이다. 김회장은 “KT&G가 장점마을의 주민건강영향조사 발표 전에는 조사결과를 지켜본다고 했고 환경부 주민건강영향조사 발표 결과 피해 발생물질이 있다고 하니 그냥 적법하게 처리했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ESG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을 주문한 것이다.

원종현 부원장의 답변을 비약해 보면 ‘못 된 짓을 제재하는 것보다 수익성을 따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와 기업의 이익 추구, 성장, 투명한 경영 등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두고 재벌 죽이기에 혈안이 된 정부가 국민연금을 무기로 재벌의 경영권 빼앗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을 앞세워 재벌 혹은 금융그룹의 총수를 갈아치우거나 견제하는 작업 외에는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혔던 에너지기업 엔론은 자산과 이익 수치 대부분이 날조됐다는 회계부정이 드러난 뒤 파산했다. ESG에 반하는 행위를 저질러 파산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엔론의 파산으로 인해 미국내에서는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지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5년에는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ESG 성과와 재무 성과 관계를 분석한 200개 연구’를 재분석해보니 "연구 대상 기업 88%에서 ESG 성과가 우수할수록 더 높은 재무 성과를 달성했다"는 연구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공적연기금이 투자한 기업이라면 ESG를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공적연기금의 투자 소식만으로도 주가가 폭등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책임투자 시장에선 선(善)과 공공성이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벌어 투자수익금을 많이 돌려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기업을 망쳐버리기 때문에 결국 투자자의 손실로 귀속된다.

스튜어드십이라는 오렌지가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탱자가 돼버리는 이유를 ‘사회적 지탄과 처벌을 받을 행위를 하는 기업이 망하지 않는 사회’라는 척박한 토양 때문이라는 국민연금의 핑계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궁금해진다.


김흥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xofon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