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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김삿갓의 송편 타령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기사입력 : 2019-09-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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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뉴시스


조선 때 숙종 임금이 어느 가을밤 옷을 갈아입고 미행을 나갔다. 남산골에 이르니 밤이 깊었다.

깊은 밤인데도 조그만 오막살이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리고 있었다. 숙종은 들창을 통해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새신랑이 단정하게 앉아서 글을 읽고 있었다. 새댁은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정겨운 모습이었다. 숙종은 흐뭇한 마음으로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신랑이 책을 덮으며 새댁에게 속이 출출하다고 말했다. 새댁은 부엌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주발에 송편 2개를 받쳐 들고 와서 새신랑에게 부끄러운 듯 내밀고 있었다.

새신랑이 송편 1개를 집어먹었다. 그러더니 나머지 1개도 냉큼 집어 드는 게 아닌가.

밖에서 엿보던 숙종은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숙종은 감동하고 말았다. 새신랑이 송편 한끝을 입에 물더니 새댁에게 입으로 전달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젊은 부부의 모습이었다.

숙종은 이튿날에도 그 아기자기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왕비에게 갑자기 송편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임금의 한마디에 대궐이 온통 분주해졌다. 이윽고 커다란 상이 올라왔다. 넓적한 푼주에 송편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숙종은 화가 치밀었다. 푼주를 들어서 내동댕이치면서 외쳤다.

“송편을 한 푼주나 먹으라니 내가 돼지란 말인가.”

숙종이 먹고 싶었던 것은 송편이 아니었다. ‘부부의 정’이었다. 대궐에서 빚은 송편이라 아마도 맛은 뛰어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송편에는 ‘왕비의 정’이 보이지 않았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송편(松餠)’이라는 시가 있다.

“손바닥 위에 놓고 빙빙 돌려서 새알을 만들고(掌上回回成鳥卵)/ 손가락 끝으로 조개 같은 입술을 하나씩 합치네(指端個個合蚌脣)/ 금 쟁반에 봉우리 천 개를 쌓아 올리고(金盤削立千峰疊)/ 옥 젓가락으로 둥근 떡을 들어 올리는구나(玉箸懸來半月圓).”

세상을 등지고 방랑하던 김삿갓도 추석 때에는 가족이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송편 빚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시를 읊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송편은 어떤가. ‘사랑’보다는 ‘가격’이다. 차례상 비용 조사에도 송편이 포함되고 있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싸다고 했다. 그러니 시장에서 한 접시 사다가 상에 올리라는 식이다. 언제부터인지 정성껏 빚은 송편은 구경하기가 힘들어진 세상이다.

올해도 ‘사랑의 송편 나누기’, ‘사랑의 송편 빚기’ 행사는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렇지만 ‘연례행사’로 빚은 송편에 사랑이 얼마나 가득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가야물감야물(加也勿減也勿)’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는 얘기다. 한가위만큼만 모든 것이 풍성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올해 추석도 넉넉하기는 틀렸다. 나라 경제가 껄끄러운 탓이다. 그 대신 가족과 이웃의 사랑이라도 가득하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데스크)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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