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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보라색 꽃들의 아파트 '층꽃나무'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기사입력 : 2019-11-0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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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숲을 사랑하는 지인들과 정읍으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다. 구절초 축제와 옥정호의 물안개, 그리고 내장산 단풍까지 살뜰히 즐겨볼 요량이었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구절초행사장은 너무 늦게 찾아간 듯 게으른 꽃 몇 송이만 남아 있었고, 내장산 단풍은 너무 일찍 찾은 듯 청단풍만 청청하여 일찍 물든 성질 급한 단풍나무 아래서 겨우 인증샷만 남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한 장면과도 같은 옥정호의 새벽 물안개를 맘껏 즐긴 것이었다. 비록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 바라던 대로 모든 것을 얻지 못한 여행이었지만 위대한 자연과 마주하는 일이 절대 간단치 않음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점차 산빛이 화려해지면서 가을꽃들이 야위어가는 요즘, 단풍의 기세에도 주눅 들지 않고 우아한 보라색 꽃송이로 층층이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있다. 다름 아닌 층꽃나무다. 처음 꽃에 관심을 가졌을 땐 층층나무와 이름이 비슷하여 곧잘 헷갈리곤 했었는데 층층나무는 봄에 흰 꽃을 피우는 교목이지만 층꽃나무는 여름 막바지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보라색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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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꽃들의 아파트 '층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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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꽃들의 아파트 '층꽃나무'

일찍이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두고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라고 노래했지만 층꽃나무야말로 풀 같은 나무다. 층꽃나무는 얼핏 보면 풀처럼 보이지만 지상에 드러난 밑 부분이 목질화 되어 있고 꽃이 피는 윗부분은 풀에 가까운 반목본성 식물이다. 추위에 약하여 한겨울같이 기후나 환경이 맞지 않으면 지상으로 나온 부분이 모두 죽어버리므로 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층꽃나무라는 정식 이름 외에도 층꽃풀, 식물체 전체에서 향이 난다고 해서 난향초(蘭香草)라고도 부른다.

층꽃나무는 주로 따뜻한 지방의 산지에서 자란다. 남해안이나 섬지방의 볕이 잘 드는 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로 바위가 많은 낮은 산의 바위지대에서 자라는데 조건이 맞으면 쉽게 군락을 이룬다. 거름이 많은 곳에선 살기 어렵고, 오히려 햇볕이 잘 드는 건조하고 척박한 곳을 좋아한다.

층꽃나무는 이름처럼 잎이 나오는 겨드랑이 부근에 작은 꽃들이 한 무더기씩 층층이 달려 핀다. 층마다 보통 20~30송이 정도가 모여 피는데 조건만 좋으면 20층까지 달리니 가히 꽃으로 쌓은 탑이라 할만하다. 아랫단부터 차례로 꽃이 피는데 꽃이 피기 전의 보라색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청보라색 작은 꽃송이를 자세히 보면 통꽃으로 중간에서 5갈래로 갈라져 거의 수평이 되게 벌어져있다. 다섯 장의 꽃잎 가운데 아래 한 장이 가장 크고 가장자리가 실처럼 가늘게 갈라져 있다. 꽃이 지고 난 뒤엔 꽃받침 안에 까만 열매가 5개씩 들어있다. 꽃받침은 말라죽은 뒤에도 그대로 붙어 있어 꽃 못지않은 멋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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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꽃들의 아파트 '층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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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꽃들의 아파트 '층꽃나무'

야생화 촬영을 하는 사람들은 바위틈에 피어난 층꽃나무를 찾아 일부러 산을 오르기도 한다. 주로 서식하는 곳이 남해안의 바닷가라서 꽃 뒤에 놓일 배경만 잘 선택하면 멋진 꽃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야생에서 만나는 층꽃나무는 가녀린 줄기로 바람을 견디느라 대부분 옆으로 누워 비스듬히 자란다. 하지만 관상용으로 정원이나 길가 화단에 심어 놓은 층꽃나무는 수직으로 자라기도 한다.

층꽃나무는 관상용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꽃나무다. 귀한 보라색의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개화기간도 길어 여름에서 가을까지 오래도록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꽃들이 점점 귀해지는 가을, 뜨락에서 꽃으로 탑을 쌓은 층꽃나무 보라색 꽃을 완상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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