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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의 '씨받이' 성애보다 한국 문화 핵심 꿰뚫는 주제 다뤄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35)] 연속성 문화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2-05-18 09:17

한국 연속성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 영화 . 주인공 강수연은 이 영화로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가 되었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연속성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 영화 . 주인공 강수연은 이 영화로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가 되었다.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 강수연님이 2022년 5월 7일 향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 그를 알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황망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며 사실상 국내 최초의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씨받이>는 개봉 당시 국내에서는 서울에서 21일간 상영했지만 입장객이 불과 1만7000명에 그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했지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여우주연상이라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장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고 강수연 배우가 열연한 <씨받이>의 줄거리는 제목에서 이미 암시하듯이 비교적 단순하다. 조선시대에 양반집 종손의 부인이 대를 이을 아이를 낳지 못하자 아들을 낳아줄 씨받이 여인으로 겨우 17세 된 여자를 땅 10마지기를 주기로 하고 데려온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씨받이를 자청한 여자는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정을 주지 말라’고 단단히 이른 어머니의 말을 명심하지만, 남자를 알게 된 후 오히려 그의 방문을 기다렸고, 성적인 즐거움에 빠진다. 또한 정작 아이를 낳게 되자 처음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미련 때문에 울부짖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남자와 아들을 모두 빼앗긴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한다.
강렬한 빨간 배경에 소복 저고리를 풀어헤쳐 윗가슴을 노출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앉아있는 젊은 여성의 고혹적인 포즈를 담은 홍보 포스터에는 ‘韓國的이고 世界的인 영화(映畫). 處女性, 人間本能의 그 처절 해부를 위한 용기 있는 접근 씨받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성애(性愛) 영화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한국 문화의 핵심을 꿰뚫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조선 시대 전통문화 특성 잘 그려낸 불멸의 수작


<씨받이> 제도는 조선시대 정실부인이 아이를 갖지 못했을 경우 사용한 편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서도 씨받이에 대한 건 없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적자를 통해 대를 잇지 못할 때는 조선 전기에는 첩을 통해 얻은 서자(庶子)가 대를 이었고 적서차별이 심해진 후기에는 남편 측의 동성 친족 중에서 양자(養子)를 들여 대(代)를 잇게 했다.

이 글의 주제는 <씨받이>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씨받이'라는 용어 자체가 한국 특히 조선시대의 전통 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점을 밝히려는 것이다. 인류학자 슈(Francis Hsu)에 의하면, 한 문화의 속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제일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문화들이 존재하지만, 가족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양자(兩者) 관계로 나누면 크게 네 가지가 있다.우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주로 아버지와 아들(父子)을 중심으로 가족이 이루어져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에서는 남편과 부인(夫婦)을 중심으로 한다. 세 번째는 인도 등이 포함되는 어머니와 아들(母子) 중심의 문화가 있고, 마지막으로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포함되는 형과 동생(兄弟) 중심의 문화가 있다.이 네 가지 문화군(文化郡) 중에서 우리나라가 포함된 부자 중심축 문화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특징은 연속성(連續性)이다. 현재의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또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아들이다. 이와 같은 패턴은 그 윗대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들은 조상(祖上)이 된다. 이처럼 나의 존재는 조상과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공파의 28대 손입니다"라고 하여야 '뼈대 있는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마찬가지로, 현재의 아들은 동시에 손자의 아버지이고, 손자는 증손자의 아버지이고 증손자는 고손자의 아버지다. 이와 같이 현재의 아들은 동시에 아버지이고, 그 자손들의 관계도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이들은 내 아들과 그 아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자손(子孫)이 된다. 다시 말하면, 조상과 자손이 계속 연속된다.

이처럼 나 자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조상과 앞으로 계속 존재하게 될 자손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된다. 이런 문화적 전통에서는 연속성이라는 특징이 나온다. 즉, 나를 통해서 조상과 자손은 영원히 계속 된다는 관념이 강하게 형성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피를 나눈 동일체이기 때문에 조상과 자손도 동일하게 하나의 혈연으로 이어진 동일체라는 관념이 강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것도 나이지만, 동시에 자손에게 그것을 물려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도 나다.

연속성의 문화에서 아들인 내가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책무는 결혼을 통해 대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 대에서 가족이 끊기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연속성의 문화에서는 내 대에서 대가 끊기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내 대에서 대가 끊기는 것은 '죽어서 조상을 뵐 낯이 없는' 불효이다. 그래서 부인 외에 첩을 얻든지 밖에서 아들을 낳아 들어오는지 대를 잇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사 한 페이지 장식한 고인의 명복 빈다


연속성의 문화에서 대(代)는 아버지와 아들, 즉 남자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문화에서는 여성은 남성의 대를 이어주는 도구에 불과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 문화에서 '남존여비(男尊女卑)'는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은 남성의 그늘에서 생활해야 하지만, 만약 결혼한 여자가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면 이것만큼 여성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어떤 수를 써도 아들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이 첩을 얻는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싫은 내색을 하면 아들도 생산하지 못한 주제에 '투기심'이 강하다는 오명을 쓰고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여성들은 그늘에서 한(恨) 맺힌 삶을 살아가게 된다.

<씨받이>에서도 애를 못 낳는 본부인의 한(恨)이 잘 나타나 있다. 젊고 어린 처녀를 씨받이로 데려와 남편과 동침시켜야 했고, 더 나아가 그 과정을 문 밖에서 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기다려야 했다. 더 나아가 문 밖에서 남편이 정사(情事)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직접 지시까지 해야 하는 '가슴이 찢어지는' 참담한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씨받이'가 임신을 하자 사람들 보는 앞에서 거짓 입덧을 하고 솜을 배에 넣어 임산부 행세까지 하고 다녀야 하는 수모(受侮)를 감수했다.

연속성 문화의 특징은 대조적으로 서양 문화와 비교해보면 더 잘 드러난다. 남편과 부인을 중심축으로 하는 문화는 '단속성(斷續性)'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남편과 부인은 대를 이어가며 역할을 물려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남편이 동시에 부인일 수는 없다. 그리고 특정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당대(當代)에서 끝나는 것이지 선대(先代)나 후대(後代)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조상과 자손의 관계는 연결된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가 끝남과 동시에 단절되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상대적으로 남녀 사이에 수평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결혼한 여자의 제일 큰 의무가 자식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서양 문화에서도 자식은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연속성의 문화에서는 일차적으로 대를 이어주는 고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단속성의 문화에서는 자식은 부모의 '양육동기'를 만족시켜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문화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한다. 우리 문화는 더 이상 조선시대처럼 연속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아니다. 또한 이미 결혼을 안 하는 젊은이들도 많거니와, 결혼 후 꼭 아들을 낳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용납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명감독과 명배우가 어우러져 한 시대의 문화를 잘 형상화한 영화 <씨받이>와 배우 강수연님의 연기는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영원히 장식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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