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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의 본질과 숭고한 사명은 모든 생명을 살리는 것"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9)] 성직자의 저주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2-11-30 09:24

종교지도자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으로서 성직자라 불린다. 성직자는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해야 하고 성직자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종교지도자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으로서 성직자라 불린다. 성직자는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해야 하고 성직자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뒤에 ‘사’자가 붙는 직업은 보통 전문직이다. 그리고 전문직에 붙는 ‘사’도 여러 종류가 있다. 예를 들면 의사, 교사, 목사, 요리사 등에는 ‘스승 사(師)’를 붙인다. 같은 법조인이라도 변호사(辯護士)에게는 ‘선비 사(士)’를 붙이는 반면, 판사나 검사에게는 ‘일 사(事)’를 붙인다. 또 외교관인 대사나 공사 뒤에는 ‘부릴 사(使)’를 붙인다. 재미있는 것은 간호사는 뒤에 ‘스승 사’를 붙이지만, 간호조무사는 ‘선비 사’를 붙인다. 어느 ‘사’가 붙는지에 따라 그들이 수행하는 일의 성격이 대략 드러난다.


오늘날에는 종교지도자, 즉 천주교의 신부, 개신교의 목사, 불교의 승려, 원불교의 교무 등을 성직자(聖職者)라고 부른다. 성직자는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성직은 세속직(世俗職)과는 다른 ‘거룩한[聖]’ 직을 수행한다. 옛날에는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의사(醫師)와 교사(敎師)도 성직자로 여겨졌고, 성직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우리 속담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의사·교사·목사의 끝말인 ‘사’는 ‘스승 사(師)’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함부로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다. 동시에 지금도 이들에게는 종교지도자에 버금가는 도덕적 수준의 삶을 요구한다. 그 대신 이들에게는 나이에 관계없이 존경심을 표한다. 지금도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종교지도자나 의사나 교사에게는 목사님, 신부님, 선생님 등 존칭(尊稱)으로 부른다. 왜 이들을 ‘스승’이라고 여기고, 그들이 하는 일을 ‘성직’이라고 불렀을까?

한 마디로 성직의 핵심은 ‘살리는 일’이다. 의사는 환자의 몸을 살리는 일을 하고, 교사는 학생의 마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종교지도자들은 신자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한다. 요즘 말로 전인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靈)이 함께 건강해야 한다. 그들은 이 세 요소의 건강과 안전함을 지켜주기 위한 봉사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소명(召命)의 직업이기 때문에 성직이라고 부른다.

성직자가 일하는 곳을 ‘성역(聖域)’이라고 부른다. 이 뜻은 성직이 수행되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범죄자를 다루는 형사물에서 자주 접하는 장면은 범인이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일 때, 신문을 원하는 형사와 시급한 치료를 원하는 의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병실에서 나가라는 의사의 말에 형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 병원 그리고 병실은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성직을 수행하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환자가 범인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환자의 건강과 치료만이 제일 먼저 고려할 사항이다. 그리고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일 뿐이다.

학교도 일종의 성역이다. 이곳은 교사가 학생을 살리는 성직을 수행하는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고려사항은 학생의 삶이다. 교사가 학생을 살리기 위해 성직에 준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교실에서는 어느 누구도 교사보다 우선할 수 없다. 아무리 교사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학생을 맡긴 학부모나 행정당국이 가서 함부로 교사를 대할 수 없다.

종교지도자가 직책을 수행하는 성당, 교회, 사찰 등도 성역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종교지도자들이 신도들의 영혼을 살리는 거룩한 사역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공권력도 함부로 종교 시설에 침입할 수 없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도피처가 성당이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아무리 공권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허락 없이 함부로 종교 시설에 침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력이라는 측면에서는 국가 공권력의 힘을 당할 수 없지만, 종교에는 거룩한 일을 하는 성역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침입할 수 없다.

성직의 특성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되 구별이나 차별을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정성을 다해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사는 환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치료해야 한다. 친구는 성심껏 치료하고 범죄자는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전쟁터에서 일하는 의사는 아군이건 적군이건 상관없이 부상병을 성심껏 치료해 주어야 한다. 친구이건 원수이건 간에 동등하게 취급하고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의사·교사·성직자 등 세속과는 다른 거룩한 직 수행
의사는 환자 살리고 교사는 학생의 마음 살리는 일
"죽기 바란다" 저주 성직자 일탈행위 "충격 그 자체"

교사도 학생을 차별하면 안 된다. 공부를 잘하고 말을 잘 듣는 학생은 더 열심히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말썽부리는 학생은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이미 성직으로서의 교육자는 아니다. 교사는 학생이 누구이건, 학생의 부모가 누구이건, 국적이 어디이건 관계없이 성심성의껏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

종교지도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헌금을 많이 내는 부자에게는 더 관심을 가지고 종교기관에서의 직급을 높여준다거나 차별하면 안 된다. 비록 지도자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으로 대하여야 한다.

물론 성직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하는 경우도 있고, 능력이 미치지 못해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직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도덕적 책무가 있다. 그것이 일반인들이 이들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현대에는 성직으로서 의사나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의사나 교사들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직업을 성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미 교사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의하고 있고, 따라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바라고 있다. 의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특수 직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지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 정체성을 어떻게 가지는지에 따라 그 직업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나 대우도 당연히 달라지게 된다. 의사나 교사를 더 이상 성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을 ‘성직자’라고 여긴다. 그래서 특수한 복장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그 신분에 맞는 대우를 해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신부들이나 목사 그리고 승려들은 복장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회에서도 아직 종교지도자들을 성직자로 대우하고 존경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성직자의 신분은 가지고 있지만, 성직자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는 어느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소위 성직자들의 일탈(逸脫)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우리 사회를 경악케 한 성직자들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들이 나타났다. 한 신부(神父)가 대통령이 탄 전용기의 추락(墜落)을 기원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온 국민이 대통령 전용기의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부탁까지 했다. 이 행위가 성직자인 신부로서 할 행동이 아닌 것은 해당 교구에서 즉각 사제 자격을 박탈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종교의 신부가 유사한 내용의 글을 올리고, 댓글로 항의가 올라오자 ‘반사’라는 글을 적으며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이 신부는 해당 교구에서 정직 처분을 받았다. 해당 종교는 “부적절한 언행과 관련, 많은 분들이 받았을 상처와 충격에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성직의 본질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 일에 종사하는 성직자가 특정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저주(咀呪)의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참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는 것은 이미 성직자임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야 할 성직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저주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성직자들은 일반인들이 그런 바람을 나타낸다고 해도 용서와 사랑 그리고 화합을 기원하고 성취할 수 있게 할 숭고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직자의 일탈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비교해 충격이 훨씬 크다.

비단 성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기보다는 화합과 화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생명을 살리고 차별과 분열을 줄이는 일에 매진할 때 우리 모두는 성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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