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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은 큰 사고 낼 때만 받는 게 아니라 생활화되어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51)] 대통령의 상담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2-12-28 10:16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에는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쌓인 마음의 짐을 상담받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사회도 대통령은 물론 모든 사람이 마음이 건강할 때 상담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에는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쌓인 마음의 짐을 상담받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사회도 대통령은 물론 모든 사람이 마음이 건강할 때 상담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2016년 9월부터 시작한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가 인기리에 방영되다가 2019년 6월에 시즌3으로 막을 내렸다. 지정생존자는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을 경우, 핵전쟁이나 테러 등 유사시 대통령직 승계가 가능한 부처 요인 중 한 사람을 지정하여 멀리 떨어진 안전시설에서 대기하도록 지정되는 사람이다. 즉, 최악의 상황이 닥치는 즉시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행정부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예비되는 인물이다. 드라마에서는 의사당이 폭파되면서 대통령과 각료들이 사망하고 승계 순위 13위에 불과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 얼떨결에 대통령직을 물려받으면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에는 대통령이 상담받는 내용이 나온다. 영부인이 친정 가족이 연루된 재판에서 승소한 후 남편인 대통령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바로 그때 부주의하게 운전하는 차량과 충돌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비보(悲報)를 듣고 대통령은 휴대전화를 떨어트리고 복도에 쓰러지면서 오열한다. 그 후 대통령은 예전과 달리 불안해하며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꾸물거린다.

대통령 보좌관들은 비밀리에 상담자를 백악관으로 불러 대통령이 상담받도록 한다. 상담을 받는 장면에서 상담자는 부인이 죽었을 때 어땠는지를 계속 물어보고 대통령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한다. 슬프고 화나는 사건을 마주하기 싫어서다. 하지만 회피한다고 심리적인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기에 상담자는 계속 그 상황에 대한 느낌을 질문하고 결국 대통령은 부인을 잃은 상처에서 점차 회복한다.

그 후 대통령 선거 때 정적(政敵)들은 대통령이 상담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대통령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격한다. 그리고 상담을 받을 만큼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공격한다. 미국과 같이 상담이 생활화돼 있고 의료보험으로 지불되는 나라에서도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정치가나 유명인에게 큰 오점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담에 대해 미국만큼 허용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더 큰 흠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담에 대해 일반인들도 정확한 이해를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최근에는 참담한 사고(事故)들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상담의 필요성을 많이 인식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언론기관이나 의료기관에서 상담받을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안내하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상담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급하게 받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생활화되어야 한다.

진정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심신(心身)’이 함께 건강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양 날개에 해당한다. 즉 새는 양 날개가 건강해야만 하늘을 날 수 있다. 만약 한 날개가 상해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병들었다면 우리 삶도 병들 수밖에 없고, 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동(運動)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체육’ 시간이 있다. 즉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운동의 중요성과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과목이 있다. 체육 과목을 통해 우리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게 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운동은 몸이 건강할 때 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몸이 아플 때는 벌써 늦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할 때 다양한 운동을 한다.


마음의 건강도 마찬가지로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교육에서는 마음의 건강에 대해 알려주는 독립된 교과목이 없다. 즉 몸의 건강을 위한 ‘체육’과 같은 과목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교육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몸만 건강하면 마음은 저절로 건강해진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몸은 매우 건강하지만 마음은 병든 사람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일상생활서 마음의 건강 지키는 교육은 필수
마음이 건강할 때 상담 받는 것이 제일 중요
상담받는다고 흉보거나 비난하는 것은 '금물'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운동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면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제일 근본적인 것은 ‘상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상담(相談)은 말 그대로 “서로 상대방[相]의 화[炎]를 말[言]로 풀어주는 활동”이다. 우리 마음속에 화가 있으면 우리는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합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홧김에 ○○했다”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가 연인에게 “홧김에 헤어지자”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홧김에”라는 표현은 화가 진정되었을 때 그 말이나 행동을 한 것을 후회한다는 걸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연인에게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던 사람은 나중에 사과하거나 변명할 때 ‘화’를 구실로 삼는다. 다시 말하면 화가 나 있는 상태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화가 나 있는 상태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했을 때 “정신이 나갔다” 또는 “그때 미쳤었어”라고 표현한다. ‘미치다’라는 말은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또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정신이 없는 상태,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살면서 화가 안 날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화를 내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가 날 때 이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화를 ‘푸는’ 것과 ‘내는’ 것은 다르다. 화를 효율적으로 푸는 방법은 “말로 표현하는 것[談]”이다. 제일 효과적인 것은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화를 즉시 표현하지 못할 경우 마음속에 쌓아두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속이 타들어 간다.” 마음속에 ‘불[火]’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았다가 화를 행동으로 나타내면 화를 ‘내는’ 것이 된다. 이 경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해칠 위험이 있다. 그래서 ‘화를 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화를 풀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하면 ‘화병(火病)’에 걸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화병(火病)’에 많이 걸린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유는 화를 내지도 풀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화를 품고 살기 때문에 ‘마음이 화상(火傷)’을 입는다.

몸이 건강할 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듯이, 마음이 건강할 때 ‘상담’을 받는 것이 제일 좋다. 그래야 마음이 계속 건강하고,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같이 중요한 결정을 수시로 내려야 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도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계속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가 날 만한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더욱더 상담을 받아야 한다. 혹시 ‘홧김에’ 나중에 후회할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 국가와 국민에게 미칠 그 피해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대통령은 아닐지라도 갑남을녀(甲男乙女)도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 결정의 결과가 우리 삶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는 신속히 화를 풀어야 한다. 혼자 풀기 어려울 때는 다른 사람과 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담이다.

이제는 상담받는다고 흉보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의 화를 풀어주는 대화를 생활화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높은 자살률과 하위에 머무는 생활 만족도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이미 우리는 장관들이나 보좌관들과도 허심탄회하게 소통하지 못하고 관저에 칩거하며 고립된 생활을 한 대통령을 경험했다. 대통령이 상담받도록 권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다. 어느 누구도 편견과 비용의 부담 없이 어느 때나 상담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쌓인 마음의 짐을 상담받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며칠 있으면 2022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묵은 화를 말끔히 풀어내고 후련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2023년을 맞도록 하자.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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