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정경화의 춤’은 강렬한 이월(移越)의 몸짓으로 다가왔다. 이월 팔일(수) 저녁 일곱 시 반, 우울을 털어내는 경건한 회복의 제일(祭日)로 삼은 정경화(정경화 류 프로젝트 대표, 성균관대 무용학 박사)는 접신의 경지에 이르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향미사'와 '까마귀 탱고'를 살짝 비틀어 시리즈를 이어간다. '향미사'와 '까마귀 탱고'를 대하는 초연의 탐색과 달리 과감한 진전의 변주는 정경화의 전공을 의심케 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동안 정경화는 ‘태평무’, ‘살풀이춤’, ‘설장고’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왔다.


정경화 안무의 're : turn 회복하다'는 인간이 저질러온 자연 파괴에 대한 경종으로 질서의 재편을 암시하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미풍을 타고 넘어온 춤이 질풍노도를 탈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인다. 가르침과 깨우침의 중심에 선 ‘바이러스’의 존재는 사소한 일상과 쉬이 존재하는 원소의 소중함을 두드러지게 했다. 암울한 시대에 무용가는 의지와 희망으로 인간성 회복의 마법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작품은 자연과 인간은 고통과 어둠, 절망의 순간을 함께하고 회복(re:turn)하기 위해 공존함을 증명했다.


정경화 안무의 '향미사Ⅱ'는 현실 극복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 의지는 전사적 이미지이거나 사막을 통달한 향미사(響尾蛇)를 닮아있다. 낮의 사막의 열기를 이겨낸 밤의 기도는 길고 심오하다. 이끼 낀 청사(靑蛇)로 다가서는 무용수들의 춤은 움직임의 심도를 더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수련은 끝없는 절망감, 죄 없는 죄책감에서 홀로서기 해야 하는 황량한 정신적 마음의 심리를 극복하고 자기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함을 표현한다. '향미사'의 집중과 군집성의 차이로 심도 있는 예술성과 음악과 움직임이 주도한 오락성은 정경화의 봄을 예고하고 있었다(출연: 정경화, 이예은, 안현수, 변현서, 박수아, 황지민).
향미사·까마귀 탱고 시리즈…고통·어둠·절망의 순간 공존
'까마귀 탱고Ⅱ'(crow tangoⅡ)는 인간은 까마귀가 아닐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삶과 존재적 가치가 초현실적 붉은 천 속에 포착된다. '까마귀 탱고'의 자극적 ‘천의 운용’이 여전히 매력으로 남아있다. 문명의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욕정을 일으킨 까마귀는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안무가는 까마귀를 스코프(scope)하면서 인간이 비판적 이성의 눈을 갖기를 희망한다. 깨달음에서 울부짖음을 획득한 고통은 몸부림으로 나타나고, 스스로 ‘까마귀 탱고’임을 밝힌다.


'까마귀 탱고Ⅱ'는 까마귀 떼를 연기해내는 무용수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부정적 요인을 상징화한 붉은 천, 단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붉은 천이 장과 장 사이를 연결함과 동시에 주제의 핵심이며 무대를 꽉 채우면서 압도적이고 묵직한 장면을 연출한다. 김예준 작곡의 음악은 젊은이들의 감각과 주제성에 부합되게 부드럽지만 구슬픈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앙상블, 드럼과 타악의 울림, 강한 전자음으로 고조된 연주로 감정의 기복을 일으키고 있다. 영상은 첫 장면부터 붉은 천과 조화를 이루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의상은 세 가지 이미지에 중점, 깔끔하면서도 간결한, 화려하지 않지만 답답하지도 않게 검정 바지에 검정 재킷(재킷 등판은 안에 살이 보이는 끈), 재킷 허리춤에 날리는 천을 붙여 탈부착 날개 역할로, 안에는 살색 톱을 입어 검정 상하의를 칙칙하게 보이지 않게 한다. 1장부터 3장 중간까지 전체 의상 착용, 3장 뒷부분 클라이맥스 부분 가운데에서 무용수들이 뭉쳐 나오는 부분은 재킷 뒷자락을 떼고 나왔고, 4~5장에서는 재킷을 벗고 살색 톱만 착용했다. 솔로 의상도 세 번의 변화를 주며 분위기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무대는 작품의 특성과 동선 구성상 깊이감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극장의 여건상 무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여 앞의 좌석들을 빼고 무대 확장이 된 상태였다. 무대가 앞으로 확장되면서 옆 가림막이 설치되고 무용수들의 등·퇴장이 가능해졌으며, 뒷무대 사용과 천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이루어졌다.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측은 “무대 확장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공간 사용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기회가 많을 것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지도: 이예은, 출연: 정경화, 이예은, 안현수, 강근희, 김가윤, 배경민, 변현서, 유한, 박수아, 박은서, 신은선, 이은경, 이채원, 이환희, 최세희, 황지민, 김주은, 송미소).
정경화 안무의 're : turn 회복하다'가 품은 '향미사Ⅱ'와 '까마귀 탱고Ⅱ'는 봄을 영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제와 움직임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