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점이자 단점인 차체를 떠나서는 모든 게 만족스럽다. 차와 내가 한번 동화되면 실내의 고급스러움이 눈에 들어오고 38인치 메인 디스플레이와 광활한 수납공간, 최고급 가죽 트림, AR 비전을 띄울 수 있는 디지털 클러스터 화면 등이 즐길거리로 변한다. 수치상 거대한 이 모니터는 제 사이즈로 보이진 않는다. 가로로 쭉 뻗어 있는 화면 비율을 꽉꽉 채워 재었는데, 실제 가용 크기는 16인치 정도 된다고 한다. 내비게이션과 연동되는 증강현실도 에스컬레이드만이 가지는 고급 사양이다.

다시 콕핏으로 돌아와 손끝과 엉덩이에 감각을 집중하면 V8 6.2리터 자연흡기 엔진 10단 자동변속기 파워트레인의 주행 느낌이 매우 부드럽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쉐보레 타호도 역시 같은 엔진을 쓰는 데 이정도로 편안하고 부드러웠나 싶다. 이게 진정 돈의 힘인가 싶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 모델은 1억6500만원의 가격표를 달았다. 타호보다는 약 7000만원 정도가 비싸다. 어지간한 프리미엄 세단을 하나 사고도 남을 금액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법은 없는 자들의 구차한 변명과도 같다. 가성비는 없지만, 럭셔리 품격은 가득한 셈이다.
부드러움은 감속에서 특히 도드라지게 느낄 수 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갑자기 떼도 울컥거림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걸 두고 순항한다는 표현을 쓴다. 감속에서 울컥거림은 엔진 회전수가 감소함에 따라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라져가는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재발견이다. 일관적으로 오르는 가속과 감속이 말 그대로 매우 자연스럽다. 브랜드의 강력한 경쟁자인 포드의 경우 에코부스트 엔진을 자랑한다. 물론 매우 효율적이고 훌륭한 엔진이지만, 인위적인 과급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자연흡기 엔진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물 위로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하는 데는 에어 서스펜션의 역할이 크다. 전자식으로 제어되는 에어 서스펜션은 노즈 다이빙도, 와인딩에서의 쏠림도 잘 잡아줘 울렁거림이 덜하다. 보통 호화 럭셔리 세단 같으면 약간 출렁이는 요트의 느낌이 나겠지만, 이 차는 한 체급 더 큰 여객선의 느낌이 난다. 어떤 길을 가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다만, 제동에는 불안감이 동반되는데, 3톤에 가까운 무게를 감당하기엔 브레이크의 능력에도 무리는 있을 듯하다. 다만, 차체가 그저 항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멈출 곳을 보고 미리 준비하는 마음 자세도 필요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