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 전기자동차가 독일 IAA 모빌리티 2023을 계기로 유럽 시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대자동차와 일본 토요타가 유럽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공세가 더해져 현지 시장구조의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유럽시장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미국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제품 생산은 물론 현지에 대한 고부가가치 기술 투자 제한 등 통상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중국 업체들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해 봤자 실익이 없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역시 규제를 가하고는 있으나 상대적으로 시장 접근이 유연한 유럽시장을 해외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IAA 모빌리티 2023에 특히 공을 들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
유럽시장에서 터를 닦은 현대차·기아와 달리 중국차의 유럽시장 공략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그동안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개발도상국으로, 위탁생산국으로 선진국의 자동차 생산 능력을 배우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생산량은 2700만 대에 달해 세계 1위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지금까지는 내수 수요에 대응했지만, 이는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최근에는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중국차의 유럽 공세는 속도전이다. 그중에서도 중국 지리(Geely), 상하이자동차그룹(SAIC)과 계열사인 MG 브랜드의 지난해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 자동차 분석기관 자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가 내놓은 1~7월 유럽시장 글로벌 완성차 기업(그룹)별 전기차 점유율 분석표에 따르면 지리그룹은 지난해 3.8%에서 올해 5.7%로 1.9%p, SAIC는 2.6%에서 5.7%로 3.1%p 급증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12.6%에서 8.1%로 4.5%p 쪼그라들었다. 폭스바겐과 테슬라를 제외한 대부분 그룹이 점유율 하락을 기록한 가운데 중국 그룹들이 약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테슬라를 뛰어넘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를 기록한 비야디(BYD)는 중기적으로 유럽시장 판매 대수 5위 내를 목표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 53개국에 진출한 비야디는 2030년까지 유럽시장에서 전기차 80만 대를 판매하고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10월 3개 모델로 시작해 13개국 시장에 진출했다. 판매량 증가도 가파르다. 지난 7월 스웨덴과 독일 뮌헨에서 전기차 판매 1위를 거머쥐었다. 앞으로 속도를 붙여 다른 유럽지역에서도 전진할 계획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유럽 생산 거점을 두고 공략에 나서겠다는 점이다. 특히 비야디의 경우 배터리와 자동차를 함께 생산하는 기업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배터리를 함께 투입해 현지 생산에 나서면 유럽 공략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핵심이 될 소지가 크다. 이들 차종은 가격 경쟁력에서 공통 타깃으로 삼는 현대차·기아 차종과 정면 대립하게 될 수 있다. 앞으로 유럽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 그 전에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이미 BYD는 그 조건을 갖춘 셈이다.
현대차·기아에 있어 유럽시장은 중요한 시장이다. 연간 판매량이 미국의 2배에 달한다. 현재 현대차·기아는 코나 EV, 니로 EV 등 보급형 전기차를 비롯해 아이오닉5, 아이오닉6, EV6, EV6 GT 등 E-GMP 기반 전기차 등 전략형 모델들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유럽 내 전기자동차 판매는 누적 50만 대를 넘어섰다. 대부분 중·소형급 현지 전략형 모델이다. 유럽은 지역 특성상 소형과 준중형으로 분류되는 B·C세그먼트 수요가 높은데 현대차·기아의 차종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현대차는 올해 유럽에서 코나 일렉트릭을 출시하며, 기아도 EV9을 하반기에 유럽에 공개할 계획이다. 중국 전기차의 경우 중형에서 고급형 모델들을 우선적으로 내놓고 있는 모양새다. BMW와 벤츠 등이 속해 있는 수익성 좋은 프리미엄 시장을 우선 공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앞으로 현대차·기아가 유럽시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으로 디자인 차별화와 더불어 현지 전략형 서비스 및 인프라 구축 등을 꼽는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최근 소개하는 디지털화된 최첨단 시스템들은 상품성에서 중국 전기차들을 압도한다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최근 현대차그룹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자동차(SDV, Software Defined Vehicle) 개발에 여념이 없다. 서비스 사업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한 행보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전기차 충전 서비스도 강화한다. 핀란드에서 기존 유럽 전기차 고객 서비스 앱인 ‘차지 마이현대’에 ‘플러그 & 차지’ 기능을 도입했다. 사용자가 별도의 앱이나 충전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전코드만 연결하면 결제와 충전이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서비스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