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다 이렇게 음식과 하나가 된다. "아아, 이렇게 먹고 죽으면 자연사야." 아침에 종종 하는 말이다. "이야말로 소확행이지." 후렴처럼 붙는 말이다. 은퇴했으니 출근에 쫓길 일도 없고, 설거지나 환기와 청소도 서두르지 않아 편안하다. 이제 더는 직장동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창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들어와서 좋다.
여기서 식욕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식욕은 분명 생리적 욕구지만, 음식에 대한 욕구가 여기만 해당하진 않는다. 군대의 초코파이는 생리적 욕구를 반영하지만, 위생적인 음식 추구는 안전의 욕구를, 가족이나 직장의 밥상공동체는 소속감의 욕구를, 입학‧졸업‧진급 등의 축하 음식은, 심지어 짜장면이나 햄버거마저도, 자기존중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스스로 질문해보자. "행복하세요?(Are you happy?) 행복하다고 느끼세요?(Do you feel happy?)" 행복함(being happy)을 A라고 하고, 행복감(feeling happy)을 B라고 하면, 네 가지 경우(A+B+, A+B-, A-B+, A-B-)를 가정할 수 있다.
소확행과 직접 관계되는 것은 아마도 경우(3)일 것이다. 도대체 왜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첫째는 의미와 재미가 균형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맛집 탐방은 재미있지만 불룩한 뱃살은 의미를 주지 않는다. 둘째는 행복은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대게를 먹으러 먼 곳까지 반복적으로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셋째는 맛있는 음식으로 주관적 행복은 얻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자기를 실현하는 객관적 행복은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한 구조적 문제다.
언제쯤일지 모르겠으나, 누구나 먹음의 소확행으로 재미와 의미가 균형 잡힌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다. 이것이야말로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길 아니겠는가?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