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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눈 내린 고향 들녘에서

백승훈 시인

기사입력 : 2023-01-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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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부-

눈이 내리고 있다. 겨울답지 않게 추적추적 연 이틀 비가 내리더니 바람의 기운이 달라지면서 흰 눈발로 바뀌었다. 고향의 낚시터에서 눈을 맞으며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게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버리는 것이란 시구가 가슴에 돋을새김되어 혓바늘처럼 까끌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눈은 세상의 풍경을 정갈하게 바꾸어 놓는다. 눈은 어느 것 하나 차별하지 않고 내려 쌓이면서 세상을 정갈한 순백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높은 산에도, 낮은 들에도 공평하게 내려 쌓이며 세상의 추한 모습을 덮고 가려서 온 세상을 청정 구역으로 바꾸어 놓는다. 눈은 푹푹 나리고, 흰 당나귀도 좋아서 응앙응앙 울어대면 더없이 평화로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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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이 잦아진다. 일부러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부쩍 고향 나들이가 잦아진 걸 생각하면 나에게도 수구초심, 귀소본능이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어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그리움에 싸여 있는 고향이란 이미지가 찬 눈에 덮인 풍경을 보고 따듯함을 느끼는 정서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하리만치 고향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고 인심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 들수록 거부할 수 없는 장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축석령이란 고개가 하나 있다. 지금은 령(嶺)이란 이름을 붙일 만큼 높은 재도 못 되지만 학창 시절의 내 꿈은 저 고개를 넘는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존 웨인과 잉그리드 버그먼을 만난 것도, 담배 연기 자욱한 음악다방에서 비틀스와 올리비아 뉴턴 존을 만난 것도, 작은 책방에서 박범신이나 이문열, 백석과 기형도를 만난 것도 그 고개를 넘은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저 고개를 넘으면 신세계가 펼쳐진다고 굳게 믿었었다. 그때에는.

고향은 더없이 너른 품을 지니고 있다. 어떠한 큰 잘못도 다 용서하고 상처마저 어루만져 주는 게 고향이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죽마고우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세상의 시름쯤은 눈 녹듯 사라진다. 힌디어에는 영어에 없는 ‘안타라야메(Antarayame)’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내 마음을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내 마음을 판단하지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다. 고향 친구들이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승살이가 힘겹거나 더는 물러날 곳도 없어지면 고향을 찾아간다. 그러곤 힘을 얻어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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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지리적으로 낯익은 곳은 진정한 고향이라 할 수 없다. 온전히 한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가치가 존중되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인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그래서 온전히 마음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진정한 고향'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눈 내린 고향의 들녘을 걸어가는 동안 마음은 더없이 평온해지고, 내 안을 시끄럽게 하던 소음들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눈이 한순간에 세상의 풍경을 흰빛으로 바꾸어 놓듯 고향은 언제나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나 자신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소외되지 않은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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