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인류사에 유례없는 팬데믹을 맞으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안정과 여유에 대한 갈망은 늘어갔다. 열심히 묵묵히 직장을 다니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부동산 투자, 주식, 코인과 관련된 유튜브 채널과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일과 저축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당했다. 여러 개의 수익 파이프라인이 있어야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2~3년 사이에 벌어진 이 혼란들 속에서 필자가 제일 안타까웠던 건, 일의 가치와 의미가 평가절하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소명 의식으로, 누군가는 정말 이 일이 너무 즐거워서, 또 누군가는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 각자의 다양하고 소중한 이유로 지금의 직장과 업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유튜버나 힘 있는 사람들의 ‘성실하게 일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경제적 자유를 빨리 실현하라’는 선동에 대중은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 일에는 어떤 마음도 담을 필요가 없는 것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절대적인 부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고임금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차라리 몸과 마음이 편한 길을 선택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일에서 의미와 행복을 찾기를 포기하고, 진짜 의미와 행복은 일터 아닌 삶 어딘가에서 찾겠다는 움직임이 생긴 것은 아닐까. 보상을 떠나 보람을 주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 몇십 년을 꾸준히 외길만 걸었던 사람들, 나에게 어떤 각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유를 크게 외치기 어렵고 껄끄러워진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 각자가 가진 일의 이유 자체가 평가절하돼서는 안 된다.
노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사회구조와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며 번아웃을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생존을, 누군가는 가족의 안녕을, 누군가는 성장과 보람을 원할 터이다. 그리고 이런 목적이 충족될 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하는 시간 동안 어떤 이유도 영혼도 담지 않겠다, 일 외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겠다, 나의 자유는 은퇴 후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평균 8만 시간을 기계처럼 보내는 것이다.
김아름 플랜비디자인 수석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