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게 이자가 센 줄 전혀 몰랐어요." 리볼빙 피해 사례를 알아보다가 종종 듣곤 했던 말이다. 리볼빙은 신용카드 대금 중 일부만 결제하면 나머지는 다음 달로 이월되고, 그 이월된 카드 부채에 이자가 부과되는 신용카드 결제방식을 말한다. 소비자로서는 신용카드 연체를 막을 수 있고 대금을 한 번에 결제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가계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내야 할 이자가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에 근접하는 고금리이므로 매우 신중하게 이용해야 하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리볼빙 서비스를 잘 모르고 이용했다는 사람들이 예상과 달리 많았다. 리볼빙은 이자가 복리로 쌓이는데다 상환일이 달리 정해져 있지 않다. 자칫하다간 눈덩이처럼 이자가 늘어나는 구조다.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서비스이다.하지만 이를 모르는 경우 권유에 의해 무심코 리볼빙을 설정했다가 나도 모르게 빚이 급속도로 불어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만약, 리볼빙의 무서움을 알고 이에 대해 교육을 받고 인지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이 서비스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설정해 빚이 쌓역가는 악순환 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문맹률이 낮은 국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융 분야에 한해서는 예외적이다.
한은과 금감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2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79세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이해력 평균 점수는 66.5점이다. 2년 전의 65.1에 비해서는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연령별 소득계층 및 학력별 양극화 현상은 뚜렷했다. 이번 해에 처음 실시된 디지털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도 저조했다.
당국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우리 국민의 금융이해력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바깥세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은 듯싶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세계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금융이해력은 142개국 가운데 77위로 금융문맹률이 6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프리카 알제리, 남미 자메이카와 같은 수준이다.
교육열도 높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이기도 한 우리나라의 금융이해도가 이렇게 빈약한 까닭은 무엇일?. 바로 체계적인 금융교육의 부재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이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주요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이해력 향상을 국가의 주요 전략으로 삼고 금융교육을 정규 교과로 편입시키고 의무화하는 등 금융 교육 강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5년 교육 개정 과정에서 금융 과정이 되레 축소됐다. 현재 금융 교육 확대를 위한 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 필수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의 유명한 말처럼, 금융 교육은 평생 자산을 형성하고 올바른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다. 하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우친 우리나라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사회에 나오고 있다.
최근 TV를 수놓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인해 빚더미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금융 교육 부재에 따른 우리나라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산을 형성하고 늘려 나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조언을 충분히 얻지 못한 청년들이 금융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산 관리와 투자에 뛰어들면서 금융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한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 18일 열린 ‘FSS 금융아카데미’에 참석해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참석한 MZ세대를 대상으로 올바른 금융 습관에 대해 강연한 바 있다.
금융이해 역량의 부족은 과도한 가계 부채, 고령층의 디지털 금융 소외 심화, 불법 대출 피해 증가 등 많은 금융 피해를 초래해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단순한 금융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금융교육 의무화를 통해 국민의 금융역량 증진을 도모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금융적 위기가 닥쳐도 대응할 수 있는 안목을 초기부터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용카드 대란, 저축은행 사태와 같이 몰라서 발생하는 금융 피해가 또다시 재현 될 수밖에 없다.
손규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bal4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