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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의 빛과 그림자'…정부 '親기업' 행보에 외면받는 항우연

낮은 임금·복지에 임직원 불만 커져
우주청 경남 설립에 '상대적 박탈감'
지난 달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모습. 사진=뉴시스, 공동취재단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달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모습. 사진=뉴시스, 공동취재단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과를 거두면서 우주산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우주 발사체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국가 항공우주개발 정책수립을 지원해야 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다.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후, 항우연 임직원에 대한 처우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민간기업 위주로 항공우주 산업이 재편되면서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항우연 노조는 지난달 28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면담을 신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현재까지 면담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우연 노조는 항우연 전체 직원 1000명 중 860명 가량이 가입해있으며 대부분의 연구직이 가입했다.

이들이 면담을 신청한 핵심 내용은 항우연 직원에 대한 처우개선 요구 때문이다. 항우연 노조에 따르면 항우연은 1000명 이상 직원과 연 6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수행하는 주요 출연연 중 신입직원 초임 보수가 '최하위'다. 최대 임금을 받는 출연연과 비교해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또 지난 2019년 1~5월 동안 달 탐사 사업단 소속 연구자들이 연구수당인 1억4000만원을 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항우연 노조는 전날인 27일 성명서를 내고 임직원 처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노조는 "항우연 연구자들은 다른 출연연이나 공공기관에 비해 한참 낮은 임금 수준과 시간 외 수당을 법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다음달 3일 발사되는 국내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 개발 사업에 참여한 연구자들이 연구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노조는 "달탐사선사업단 소속 연구원들은 2019년 5개월 간 총 1억4000여 만원의 연구수당을 받지 못해 현재 연구원 측과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며 "달탐사사업단 소속 연구자들은 발사를 앞두고 인근 다른 출연연으로 이직하거나 병마와 싸우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항우연이 처우 문제와 씨름하는 사이 항공우주 산업을 담당하는 민간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KAI는 누리호 체계의 총 조립과 1단 연료탱크·산화제 탱크의 제작을 맡았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엔진을 제작했다.
이들 외에 현대중공업은 나로우주센터 내 누리호 발사대를 제작했으며 현대로템과 두원중공업, 에스앤케이항공 등 300여개 기업들이 누리호의 제작과 발사 등에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최근 정부가 우주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기로 하면서 호재를 맞았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총 6873억8000만원을 투자해 누리호 반복 발사와 민간 기술이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달 중 나라장터에 공고를 내고 9월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사업에 선정되는 체계종합기업은 2027년까지 항우연과 공동으로 누리호를 4회 반복 발사하며 누리호 설계·제작과 발사 기술을 이전 받는다.

이에 대해 항우연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앞서 지난 6일 항우연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항우연 관계자와 간담회에서 "그동안 우주 기술은 항우연이 육성해온 만큼 기술이 산업체로 이전돼야 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이 먼저 필요한 기술에 자체 예산을 투입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항우연에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데 현재는 항우연에 기술 개수가 많아 기업이 값싸게 이전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자신을 항우연 직원이라고 밝힌 이용자가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KA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무상이전을 추진 중"이라며 "나라에서 공짜로 노동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과기정통부는 이와 관련해 무상이전은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이와 관련해 "누리호 기술이전에 대한 기술료는 항우연과 체계종합기업 간 협의를 통해 확정할 예정"이라며 "체계종합기업 선정 평가를 통해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 항우연은 해당 기업과 누리호 기술의 민간이전에 대한 상세내용, 기술료 등을 협상하여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방문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은 항우연 대전 본원의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1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커피차와 피자를 제공했다.또 항우연 사측에서는 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전복삼계탕을 제공한 바 있다.

항우연 측은 이에 대해 "전복삼계탕을 인센티브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비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직원들은 일부 박탈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김승연 한화 회장은 누리호 발사에 참여한 임직원들에게 포상휴가와 격려금을 지급해 항우연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밖에 정부가 항공우주산업의 컨트롤타워로 추진하는 항공우주청의 설립에 대해서도 항우연 차별이 느껴진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항공우주청을 경남 사천에 건립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KA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모두 사천에 위치해있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도 사천과 가까운 만큼 항공우주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항우연과 KAIST 등 연구기관, 학교가 대전에 있고 항공우주청의 상급기관이 될 수도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종시에 있는 만큼, 항공우주청도 대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과학계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오고 있다.

대전 지역 과학단체는 성명을 내고 항공우주청을 경남에 설립하는 것에 대해 '비과학적인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항공우주청은 우수한 우주 관련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대전에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공우주청 설립 예정지인 경남 사천시는 항우연 본원으로부터 약 2시간30분 정도 떨어져있다. 대단히 먼 거리는 아니지만, 정책과 기술 협의 등을 진행하기에는 불편을 야기할 수 있는 거리다.

과학계 한 관계자는 "항공우주청을 경남에 설립하는 것부터 정부가 항우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누리호 발사 성공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이뤘지만 그 밑거름이 된 연구인력을 잃게 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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