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과 유럽연합(EU)이 12월 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가 상한제를 시행하는데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러시아와 에너지 부문에서 긴밀한 협력 체계(partnership)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중국 관영 매체 CCTV가 이날 보도했다. 시 주석은 제4차 중국-러시아 에너지 포럼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을 화나게 하는 일이라고 AP 통신이 지적했다.
시 주석은 “에너지 분야 협력은 중국과 러시아 간 실질적인 협력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양국 간 협력의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우정에는 한계가 없다”고 강조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중국은 동참하지 않고 있다. G7과 EU가 추진하는 러시아산 원유가 상한제에도 중국이 참여하지 않을 게 확실하다. 러시아는 원유가 상한제에 맞서 중국과 인도 등에 대한 원유 공급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구매 규모가 올해 10월에 102억 달러 (약 13조 5700억 원)에 달했고, 이는 1년 사이에 2배가 증가한 것이라고 AP가 전했다. 중국은 유럽을 비롯한 서방에 대한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사들이고 있다. 현재 러시아산 원유 수출 가격은 배럴당 52달러(약 6만 9600원)로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보다 39%나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러시아산 원유와 브렌트유의 가격 차는 배럴당 2.85달러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33.28달러에 이른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가 해상으로 수출하는 원유량의 3분의 2를 수입하고 있다. 또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하는 원유의 절반이 중국으로 향한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3국 가스 연맹 구성을 추진하고, 중국과 에너지 장비 공동 개발에 나선다고 스푸트니크와 로이터 통신이 전날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2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 회담에서 양국과 우즈베키스탄 등 3개 나라가 참여하는 가스 연맹 창설 방안을 논의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3개국 연맹을 결성하고, 중국 등에 대한 가스 수송을 지원하기 위한 가스 연맹 결성 방안을 논의했다.
노박 부총리는 4차 러시아-중국 에너지 비즈니스 포럼 연설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석유·가스 장비 개발 및 생산에 양국이 공동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만의 러시아 항만도시 우스트-루가를 통해 중국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고, 이곳에 추진 중인 대규모 가스·화학 복합단지 프로젝트에 중국이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5일 러시아산 원유가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면 G7과 EU, 호주 등은 상한액 이상으로 수출하는 러시아 원유에 대한 모든 운송·금융·보험·해상 서비스 제공을 금지한다. 영국은 이미 가격상한제 위반 기업에 대한 모든 운송·보험·중개 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원유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러시아의 원유 수출 규모가 단기적으로 하루에 최대 200만 배럴가량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 규모는 국제 유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로이터가 전문가 대상 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도 러시아산 원유가 상한제가 시행될 때도 러시아가 현재의 80~90%가량에 해당하는 원유를 계속해서 수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러시아의 하루 원유 수출이 100~200만 배럴 줄어든다는 뜻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