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을 전격 인수했으나 은행 위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월가에서는 제4, 제5의 파산 은행이 속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경제 매체인 야후 파이낸스는 2일 (현지시간) 미국의 4800개 은행 중에서 절반가량인 2315개의 은행이 뱅크런 사태가 났을 때 예금을 돌려줄 수 없는 실질적인 파산 상태에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과 채권 시장이 충돌하면 미국 은행에 있는 9조 달러에 달하는 비보호 예금이 한나절 만에 인출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금융 전문가인 미 스탠퍼드 대학의 아미트 세루(Amit Seru) 교수는 이 매체에 “미국에서 수천 개의 은행이 물속에 잠겨 있다”면서 “이것이 마치 실리콘밸리은행(SVB)이나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만의 문제인 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미국 은행이 현재 잠재적인 지급 불능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세루 교수와 금융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후버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채무보다 자산이 더 적은 은행이 미국의 4800개 은행 중에서 2315개 은행에 달한다. 이 보고서는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에 따른 시장 가치(market value)가 장부 가격(book value)에 비해 2조 달러가량 낮다”고 분석했다.
후버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규모가 1조 달러가 넘는 세계 10대 은행 중의 하나와 미 정부 당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대상인 3개의 또 다른 대형 은행도 자산이 채무보다 적은 상태에 있다. 이 보고서는 “이 문제는 자산 규모가 2500억 달러 미만으로 정부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지 않는 은행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퍼스트 리퍼블릭 파산 사태가 다른 지역 은행들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뉴욕 증시에서 이날 은행주들이 급락세를 보였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지역 은행 팩웨스트 뱅코프가 27.8%,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웨스턴얼라이언스 뱅코프가 15.1%, 텍사스주 댈러스에 본사를 둔 코메리카은행이 12.4%.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키코프가 9.4%, 뉴욕주 소재 메트로폴리탄은행이 20.5% 각각 급락했다. KBW 지역 은행 지수는 5.5% 급락해 2020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대형 은행들의 주가도 하락했다. 퍼스트 리퍼블릭 인수 발표 직후 주가가 올랐던 JP모건은 하루 만에 1.6% 떨어졌고, 뱅크오브아메리카(-3.0%)와 웰스파고(-3.8%)는 낙폭이 더 컸다.
미국 정부와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금융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시장은 그런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