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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는 성숙한 사회 기대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76회)] ‘공명지조(共命之鳥)’의 성숙함을 고대(苦待)하며....

한성열 기자

기사입력 : 2019-12-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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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범국민투쟁본부의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사진=뉴시스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이 한 해를 돌아보면서 과거 일년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그래서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그 해 사회의 궤적을 가장 적확하게 짚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년 2019년을 돌아보면서 <교수신문>은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안한 최재묵 영남대 철학과 교수에 의하면, "공명조는 머리는 2개인데 몸통은 하나이다.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몸은 하나인데 마음이 둘인 셈이다. 한 나라의 백성인데 두 가지 마음으로 쫙 갈라진 우리 현실과 흡사하다. 두 마음이기 때문에 화합이 쉽지 않다. 시기・질투하며 으르렁대던 어느 날, 한 머리가 맛좋은 과일을 저 혼자 먹는 걸 다른 머리가 알고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다른 머리는 한 머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독 있는 과일을 먹는다. 결국 독이 온 몸에 퍼져 둘 다 죽고 만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 상황 마치 공명조 바라보기 같아

한쪽 사라지면 죽게 되는 안타까움 들어

'전생애발달심리학(life-span developmental psychology)'을 주창한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발달단계론을 주장한 다른 학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발달단계 명칭이 이를 잘 나타낸다. 보통 심리학자들은 각 발달단계의 명칭을 정할 때 그 단계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한 단어로 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성격 발달단계를 프로이트(S. Freud)는 '구순기' '항문기' '외디퍼스기' '잠재기' 등으로 불렀다. 또 인지발달 단계를 설명하면서 피아제(J. Piaget)는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그리고 '형식적 조작기' 등으로 불렀다.

하지만 에릭슨은 이들과 다르게 '기본적 신뢰 대 불신' '자율성 대 수치 및 회의'처럼 서로 대칭이 되는 개념을 쌍으로 붙이는 독특한 단계명을 사용하였다. 이 명칭을 통해 에릭슨이 발달을 바라보는 그만의 철학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생후 첫 일 년을 그는 신뢰(信賴) 혹은 불신(不信)을 익히는 시기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다른 발달론자들처럼 단순히 '신뢰기'라고 부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의하면, 만약 '신뢰기'라고 부르면 그와 반대가 되는 '불신'은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즉, 신뢰는 좋은 것이고 불신은 나쁜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에릭슨도 '불신'보다는 '신뢰'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불신'도 우리의 발달이나 삶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불신'이 없다면 '신뢰' 자체가 발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뢰'라는 자아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불신'하는 힘도 당연히 필요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믿을' 대상과 '믿지 못할' 대상을 구별하는 능력 자체가 기본적 신뢰를 발달시키는 근본이 된다. 우리는 믿기 위해서 믿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불신'은 '신뢰'의 존립 근거가 된다.

이런 이중적이고 대칭적인 구조는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추함'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 '미(美)'와 '추(醜)'를 구별할 기준이 없다면 '미추'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악(惡)'이 없다면 '선(善)'도 존재할 수 없다. 마치 '여자'가 없으면 '남자'라는 개념과 범주가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자'가 없다면 '남자'가 아니라 단지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다. '밤'이 없으면 '낮'도 없다. 다만 '하루'가 존재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릭슨은 모든 발달은 서로 대칭되는 두 가지 개념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신뢰'가 '불신' 보다는 더 좋은 것이고, 신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신'이 없게 상태를 만드는 것보다 '불신'보다는 '신뢰'가 더 강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신뢰'와 '불신'은 비율의 문제이다. 다만 '신뢰'가 '불신'보다 클 때 우리는 통칭 '신뢰'가 잘 발달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100% 완전한 인간 존재하지 않기 때문

성숙한 사람은 자신 불완전 존재 인정

변증법적 심리학(Dialective psychology)을 주창한 리겔(Klaus Riegel)도 성숙한 성인들은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고 제안한다. 이들은 어떤 사실이 진실일 수도 있고 동시에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 이 세상에는 100% '참(진실)'인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모든 현상에는 '옳음'과 '그름'이 혼재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옳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그름'보다 '옳음'이 더 많다는 것일 뿐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인정한다. 왜냐하면, 100% 완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완전'과 '불완전' 사이의 어딘 가에 존재할 뿐이다. 다만 '불완전'보다는 '완전'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강함의 표시라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현실의 모든 측면을 고려할 수 없는 조건에서 판단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인다. 따라서 '나'에게는 진실이지만 '너'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기꺼이 인정한다. 이 인정이 조화와 타협의 전제 조건이 된다.

변증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비일관성과 모순을 잘 감지하고 정(正, theses)과 반(反, antitheses)으로부터 합(合, syntheses)을 이끌어낸다. 또한 합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 합은 정이되고 또다시 반이 생기는 과정이 되풀이 된다. 따라서 이들은 항상 인지적 불평형(不平衡) 상태에 있다. 이들은 갈등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피해야 할 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을 통해 한 단계 더 놓은 수준으로 성숙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없애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하려 한다.

우리는 쉽게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지 물리적으로 동일한 날개가 두 개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말의 더 정확한 의미는 서로 다른 상대가 있을 때 더욱 빨리 그리고 높게 성취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것이 많이 있어보았자 양만 많아질 뿐이다. 내용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많이 있을 때 다양한 환경 속에서 효율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이나 사회에서는 나와는 다른 날개를 제거해버리고 두 날개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면 더 높이 더 빨리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살아간다.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나와 다른 쪽을 '악'으로 규정하고, 없애야 될 대상으로 지각한다.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명칭을 붙여 자신의 적대감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핍박하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왜냐하면, 나와 다른 날개를 보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보수' 혹은 '진보'라는 범주에 속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에 속하는 사람이 모두 동일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보수 속에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진보'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보수'와 '진보'라는 범주로 구태여 나눈다면 '진보'는 진보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뿐이다. 동시에 '보수'가 없다면 '진보'도 존재할 수 없다.

에릭슨은 사랑을 "서로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헌신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새해에는 '같기 때문에' 사랑하는 미성숙한 사랑이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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