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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새해엔 꽃심으로 살자

백승훈 기자

기사입력 : 2020-01-0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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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새로 선물 받은 삼백예순다섯 날에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담아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이 어떠하든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2년여에 걸쳐 이 지면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소개하는 동안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고 많이 행복했다. 내가 소개한 꽃을 보고 어떤 이는 그동안 무심했던 야생화에 부쩍 관심을 두기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초록별 지구를 지켜온 그 중심에 꽃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여기에 소개되는 꽃들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팍팍하던 마음이 촉촉해지고 향기로워졌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꽃이 없는 겨울을 빗대어 '꽃궁기'라고 한다. 꽃빛이 궁한 계절이란 의미겠지만 이렇게 한 계절 꽃을 그리며 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다이아몬드가 귀한 대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듯 초목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겨울이 있어 사람들이 꽃 피는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리 고운 꽃이라도 늘 지천으로 널려 있다면 누가 귀한 줄 알겠는가. 눈보라 찬 겨울을 견딘 후에야 비로소 만나는 꽃빛이라야 벅찬 감동과 환희로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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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꽃이 없는 겨울엔 뭐하고 지내냐고. 겨울이라 해서 꽃을 보는 사람이 마냥 한가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며 새봄에 피어날 꽃들을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듯이 꽃을 맞이할 새로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숲해설가 공부를 하느라 봄부터 가을까지 숲에서 살다시피 했다. 날마다 들로 산으로 다니며 꽃을 보고, 나무를 보며, 숲을 만나며 살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숲속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모두 작은 우주이고 커다란 세계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도서관이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환호하지만 식물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사람들과는 무관하다. 오직 곤충을 유혹하여 자신의 씨를 널리 퍼뜨려 종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과 혜택을 베푼다.

일찍이 박노해 시인은 '꽃내림'이란 시에서 밥도, 삶도 꽃을 타고 왔다고 하며 '밥심보다 꽃심'이라고 했다. 흔히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밥심은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이니 곧 밥의 힘이 밥심이다. 그렇다면 '꽃심'이란 무엇인가. '꽃심'은 전라북도 방언으로 '꽃의 가운데 부분' 또는 '꽃과 같이 귀품 있는 힘이나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꽃의 힘이자 꽃의 마음이 곧 '꽃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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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꽃을 찾아 숲속을 다니다 보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이고 올라오는 여린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가장 단단한 것을 가장 여린 것이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 자연의 경이로움은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눈 속에 피어난 설중매도 아름답지만 언 땅을 녹이며 올라와 봄눈을 이고 피어난 노란 복수초나 바람꽃들을 마주하면 꽃심이야말로 가장 여리지만 가장 강한 힘이란 걸 깨닫게 된다.

여느 해나 그렇듯이 새해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새 생명을 틔워내고 꽃을 피우는 꽃의 힘, '꽃심'으로 살아간다면 새해는 분명 지난해보다 나을 것이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꽃심'으로 살아 세상 가득히 웃음꽃을 피우길 소망해본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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