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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겨울 숲은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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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숲으로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지난여름 이사를 한 뒤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 너머로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산을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도 자주 숲을 찾지 못했다. 눈길 닿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물리적으로는 가까이에 있으나 숲은 늘 마음 밖에 머물러 멀리 있었던 셈이다. 겨울엔 꽃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숲으로 가는 길에 스스로 마음에 바리케이드를 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숲엔 꽃이 아니라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을 사로잡을 매혹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나의 소박한 새해 소망 중의 하나는 자주 숲을 찾아 숲과 좀 더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모처럼 집 근처의 숲을 찾아 나무 사이를 거닐었다. 어느 시인은 나무를 두고 ‘등이 굽지 않은 언어(言語)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라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나는 잎을 모두 떨군 채 꼿꼿이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들은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도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목도리를 친친 감는데 나무들은 알몸으로 북풍한설과 당당히 맞선다. 나무는 그렇게 추위를 견디면서 봄을 기다린다. 참 아름다운 인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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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낙엽세상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좋아 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서니 저만치서 청설모 한 마리가 낯선 인기척에 놀라 나무 위로 줄행랑을 친다. 과거에는 고급 붓을 만드는데 청설모의 꼬리털을 이용했다. 청설모의 옛 이름은 청서(靑鼠)였는데 그 털을 많이 이용하다 보니 청서의 털이라는 뜻의 지금의 청설모가 된 것이다. 아름다운 줄무늬를 지닌 다람쥐와는 달리 검푸른 털을 가진 청설모는 종종 외래종으로 오해하여 사람들에게 홀대를 받지만 청설모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살아온 토착종이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korean squirrel(한국 다람쥐)다.

청설모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대신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 두세 시간 정도만 활동한다. 청설모도 다람쥐처럼 가을에 밤이나 잣, 가래 같은 나무 열매를 주워 땅속에 굴을 파고 저장한다. ‘다람쥐의 건망증이 숲을 키운다.’는 말처럼 청설모가 땅속에 묻어두고 미처 찾지 못한 열매들은 봄이 되면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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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 외에도 겨울 숲엔 다양한 생명이 눈에 띈다. 찔레 열매를 쪼고 있는 박새도 보이고 노박덩굴 사이로 꼬리에 푸른빛이 도는 산까치가 날고 잣나무 숲에선 멧비둘기가 운다. 계곡의 바위엔 이끼가 푸르고 얼음장 사이로 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른다. 양지 바른 길섶엔 로제트 식물이 푸른 잎을 지면에 바짝 붙인 채 햇볕을 쬐고 있다. 겨울 숲을 멀리서 보면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아도 정작 숲에 들면 숲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굳이 꽃을 보지 않더라도 숲에서 시간을 보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숲에서 한 시간을 보내면 기억력과 주의 집중 시간이 20% 정도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숲을 산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너그러워짐을 느낀다. 무엇보다 숲에 관심을 두게 되면 절로 겸손해진다. 숲속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에 흥분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찮은 풀꽃에 왜 관심을 두느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나는 “위대한 영혼의 특징은 위대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평범한 것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라는 고대 철학자인 세네카의 말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 왜 숲에 가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직접 숲을 찾아보시라. 숲에 그 답이 있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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