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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 수사학

김석신 기자

기사입력 : 2020-01-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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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수사(修辭)는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미는 행위고, 수사학(修辭學)은 효과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말을 해야 사람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 궁리했는데, 수사학의 핵심이 바로 설득력이다. 그렇다면 음식 수사학은 무엇일까? 음식의 장식이나 광고를 일컫는가? 아니다. 음식을 멋지게 꾸미는 것이나 그럴듯한 이미지 광고를 연상하기 쉽겠지만, 음식 수사학의 핵심도 여전히 설득력에 있다. 음식은 늘 우리를 설득하려 애쓰고 있고, 우리는 설득되기 쉽기 때문이다. 음식 수사학에서 음식은 이야기하는 화자(話者)이고,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청자(聽者)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요소로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성), 에토스(도덕성)를 꼽았는데, 이 세 요소는 이야기의 논리, 공감,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로 풀이할 수 있다. 한편 음식의 요소는 맛, 영양, 안전성이지만 오늘날 안전성 부족에 따른 식품위생 사고가 잦기 때문에 맛, 안전성, 영양의 순서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음식의 맛은 파토스와, 안전성은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의 에토스와, 영양은 로고스와 관계가 있으며, 음식 수사학의 요소는 공감, 신뢰, 논리의 순서를 보인다.

음식을 먹을 때 첫 번째로 만나는 것이 맛이고 여기에 파토스가 관계된다. 음식은 약과 달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맛에 공감한다면 “엄지 척!” 음식에 설득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가위표!” 절대 설득되지 않는다. 설득된다면 충성심 깊은 단골이 되겠지만, 설득되지 않는다면 해당 음식을 다시는 찾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음식의 맛에 공감할 수 없다면 신뢰나 논리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음식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고, 상응하는 파토스와 공감이 있어야 우리는 음식에 설득된다.

음식을 먹을 때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이 신뢰고 여기에 에토스가 관계된다. 외식하거나 식품을 사서 먹을 때조차 우리의 기준은 집밥이다. 집밥은 “우리”라는 2인칭의 가족이 신뢰하면서 안심하고 먹는 것이다. 그래서 외식이나 식품을 살 때 관성적으로 신뢰와 안심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경우 3인칭의 “그들”이 만들어 팔기에 불신과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그래도 우리는 집밥 수준의 신뢰와 안심을 희망하고, 더욱이 값을 지불하고 사먹는 만큼 이에 상응하는 에토스를 기대한다. 만약 반찬에 밥알이 섞여 있다던가, 이물질이 들어있어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의 에토스를 의심하게 되면, 해당 음식은 설득은커녕 철저하게 외면받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세 번째로 만나는 것이 논리고 여기에 로고스가 관계된다. 이 경우 영양이 논리의 핵심이고 건강기능성은 논리를 강화한다. 설득력이 강한 음식의 예로 한식이나 지중해 식단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논리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갓 구워낸 피자와 냉동피자의 영양성분이 같을 때, 전자에만 설득될 이유가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음식 수사학의 요소인 맛, 안전성, 영양의 순서가 중요한 것이다. 따끈한 피자가 데운 냉동피자보다 맛좋은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니 따끈한 피자에 설득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음식 수사학에서는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의 순서와, 공감, 신뢰, 논리의 순서가 중요하다. 특히 로고스와 논리의 순서가 마지막임을 잊지 말아야 음식에 제대로 설득될 것이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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