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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숲, 최고의 쉼터

백승훈 기자

기사입력 : 2020-01-1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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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며칠째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눈길 한 번 걸어보지 못한 채 봄을 맞이해야만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설산의 풍경이 아쉽긴 하지만 숲을 거닐기엔 딱 좋은 날씨다. 집을 나서면 옷섶을 헤집는 찬바람이 성가시긴 해도 조금 걷다 보면 알맞게 몸이 더워져서 숲으로 가는 발걸음이 점점 경쾌해진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산과 만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숲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일상이 권태롭거나 머릿속이 복잡하여 마음에 휴식이 필요해지면 곧잘 숲을 찾아 집을 나선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무료하던 일상이 다시 반짝이며 빛을 발하고 모호하던 생각들이 명료해진다.


한자 쉴 휴(休)자를 파자(破字)하면 사람(人)과 나무(木)가 된다. 진정한 쉼(휴식)은 사람이 나무(숲)와 함께 있는 것이다. 숲을 뜻하는 영어 forest 역시 휴식을 위한 것(for rest)이다. 그런 의미에서 숲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딱히 휴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도 만물을 품고 있는 숲은 언제나 삶에 지친 우리를 편안하게 품어준다. 숲에는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맑고 밝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멋들어진 숲의 경관을 비롯하여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맑은 공기와 온습도, 자연과 동물이 만들어내는 소리, 나무 사이를 비추는 햇빛 등이 우리의 오감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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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초록색은 날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텔레비전과 선명한 LED 조명에 시달리며 혹사당했던 우리의 피로한 눈을 쉬게 하고 편안하게 해준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해충과 상처로부터 자신를 보호하기 위하여 생성하는 물질이지만 공기 속에 포함된 피톤치드가 우리의 몸에 들어오면 후각은 물론 심폐기관까지 안정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숲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 같은 자연의 소리는 우리의 심신을 편안하게 하고, 집중력을 향상해준다. 자연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숲속에서 먹고, 걷고, 쉬는 모든 행동이 치유되는 셈이다.

숲을 걸을 때는 물론 동행이 있어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고독을 즐기라는 얘기가 아니다. 혼자 걷다 보면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땐 들을 수 없었던 길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의 주고받는 말에 묻혔던 자연의 말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귓바퀴에 감겨올 것이다. 그렇게 오감을 열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숲은 사색의 공간이 되고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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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은 무채색이어서 수묵화에 가깝다. 새봄을 기다리며 온몸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는 겨울나무들을 보면 자연이 주는 간결한 기운이 느껴진다. 초록의 무성한 여름 숲이나 단풍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가을 숲과는 확연히 다른 찬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겨울 숲만의 매력이다. 낙엽이 쌓인 숲속을 천천히 걷다 보면 차고 정한 숲의 힘이 느껴지며 그 힘으로 이 추운 계절을 거뜬히 건너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낮이 짧은 겨울엔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기분 전환을 위한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장소를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울적하다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가까운 숲으로 갈 일이다.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이고, 마음 가는 곳으로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숲속의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가지런해지고 활력이 생겨날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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