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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작은 것’으로 ‘큰 것’ 이룩한 신격호 회장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1-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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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싸구려 비누와 포마드, 크림 등 화장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미제 추잉껌을 가지고 찾아왔다.

당시 껌은 가마솥과 요리용 칼만 있으면 누구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추잉껌 제조업자가 일본 내에 350∼400개나 될 정도로 많았다. 신 명예회장은 비누를 만들어 본 기술을 바탕으로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최대의 껌 메이커인 ‘하리스’는 합성수지로 껌을 만들고 있었다. 신 명예회장은 천연 치클로 껌을 제조해야 하리스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 명예회장은 미제 껌의 성분을 분석하고 연구한 끝에 10엔짜리 ‘바브민트’와 20엔짜리 ‘스피아민트’를 내놓았다. 1954년이었다.

1957년에는 엽록소가 들어 있는 20엔짜리 ‘그린껌’을 출시했다. 그러자 하리스도 ‘그린’이라는 이름이 붙은 껌을 내놓았다. 경쟁이 치열했던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다시 ‘쿨민트’를 출시, 하리스를 제압해야 했다.


‘값싼’ 껌으로 성공한 신 명예회장의 비결은 연구 개발과 독특한 판매 전략 덕분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의 남극 학술 탐험대가 탐험용 껌을 주문했을 때 선상식, 기지식, 행동식, 비상식 등 4가지 용도의 껌을 개발했다. 일본에서 남극을 가기 위해서는 적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적도의 더위와 영하 50도의 추위에서도 변질되지 않는 껌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또 껌에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도 첨가했다.

눈과 얼음 위에서 탐험 대원들이 조난당했을 경우를 대비, 껌의 색깔도 흑색, 녹색, 적색, 황색 등 선명한 원색으로 만들었다. 씹던 껌을 버리면 구조대가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공해가 심한 공장 종업원이 씹을 수 있는 ‘제산성(除酸性)’ 추잉껌도 만들었다. 이온 교환수지 제재를 껌에 첨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제산제에 비타민, 칼슘을 추가한 ‘PC껌’을 만들어 철강, 화학 공장 등 30여 개 업체에 납품하기도 했다. 엄청난 연구 개발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 껌 시장을 ‘역 피라미드형 전략’으로 장악했다. 소매점부터 장악한 후 중간 도매상, 지방 도매상, 대리점, 특약점을 롯데 본사와 연결하도록 조직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주부 사원 등을 동원, 소매점을 순회시키고 담뱃가게와 약국 등도 개척했다. 껌을 파는 만큼 보수를 더 주는 인센티브제도도 도입했다.

‘1000만 엔 현상 천연 치클 세일’ 등 독특한 광고 전략도 폈다. 추첨을 통해 1000만 엔의 상금을 주고 부상으로 100만 엔을 별도로 주는 대규모 광고 행사였다. 당시 일본의 가구 당 평균 수입이 2만5000엔 정도였을 때 이처럼 대규모 현상금을 건 행사를 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시장에서는 미국의 ‘리글리’를 제압했다. 미국과 유럽 껌은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롯데 껌은 부드러워 중국인의 입맛에 맞아 인기를 끌었다. 리글리의 경우 중국에 공장을 짓는데 2∼3년이 걸렸지만 롯데는 수출에 주력, 껌 시장을 곧바로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신격호의 비밀, 정순태 지음>

지난 2016년 롯데제과는 1967년부터 49년 동안 팔린 롯데껌의 누적 매출액이 4조 원을 돌파했다는 자료를 냈다. 그 껌을 ‘쥬시후레쉬’로 환산하면 약 300억 통으로,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330번 감을 수 있는 1320만㎞에 달한다고 했다. 또, 낱개로 따지면 약 2000억 개로 세계 인구가 27번씩 씹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몇 푼’ 되지 않는 껌으로 거대한 롯데그룹을 키우고 ‘롯데월드타워’를 우뚝 세울 수 있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룩한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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