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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바이러스와 집밥과 남녀평등

김석신 기자

기사입력 : 2020-03-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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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이 외식을 자제하면서 집밥이 늘어났다고 한다. 아마 감염 예방을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귀가를 서두르기 때문이리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좋겠지만, 식당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집밥과 외식의 일시적 역전은 우산장수와 소금장수를 둔 부모의 심경을 헤아리게 한다.


물론 외식비가 줄어드는 만큼 가정경제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늘어나는 집밥을 위해 누군가는 음식 준비를 더 자주 해야 한다. 이것이 바이러스가 반갑지 않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역으로 바이러스 문제가 해결되면 외식이 폭증하고 집밥이 대폭 감소할까? 물론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외식과 집밥은 다시 균형을 이루리라 짐작된다.

이 외식과 집밥의 균형은 국민건강을 위해 다행스럽지만, 외식이 아닌 집밥은 여전히 누군가의 음식 준비를 필요로 한다. 그 누군가는 남편보다 아내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음식 준비는 가사(家事)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고 힘들다. 그 힘든 가사, 특히 음식 준비를, 남편과 아내가 분담하는 문제는 난해한 수학문제처럼 풀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는 남녀불평등이라는, 오래되고 왜곡된 핵심 전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전제가 풀리지 않는 한 어떤 해결방안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도대체 남녀불평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신석기시대부터라는 견해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아무튼 전 세계적으로 오래된 문제임이 틀림없다.


이렇듯 남녀불평등은 왜곡된 상태로 참으로 긴 세월 존재해왔다. 여기서 남녀불평등을 오랫동안 구부러진 상태로 있는 쇠막대나 오랫동안 쭈글쭈글한 상태로 있는 철판에 비유해보자. 뒤집어보면 남녀평등은 구부러진 쇠막대나 쭈글쭈글한 철판을 바르게 편 상태를 가리키게 된다. 우리는 쇠막대나 철판을 바르게 펴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망치로 때려서 펴는 방법이다. 이는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주로 페미니스트나 여권 운동가들이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쇠막대나 철판을 망치로 때려서 편다면, 펴지기야 하겠지만, 흠 없이 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펴진 상태가 고르지 않고 부분적으로 울퉁불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남녀불평등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이상적인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볼 때,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남녀 모두에게 흡족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 높은 압력으로 눌러 펴는 방법이다. 이는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엄청난 힘과 막대한 자금으로 강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흠을 남기지 않고 쇠막대나 철판을 펼 수 있지만, 약간이라도 압력이 높거나 낮으면, 펴지는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남자나 여자 어느 한 편이 유리하든가 불리하게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첫째 방법과 둘째 방법을 병용하게 될 텐데, 그래도 여전히 바람직한 해결방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셋째, 뜨겁게 달구어 펴는 방법이다. 이는 대장간에서 농기구를 가공할 때처럼 쇠를 반 용융상태로 뜨겁게 달구어 펴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도 망치로 때리거나 압력을 가해 누를 수밖에 없겠지만, 가열하기 때문에 앞의 두 방법보다 흠 없고 편평한 쇠막대나 철판을 얻을 수 있다. 이 방법의 핵심은 반 용융상태로 뜨겁게 달구는 것이데, 이는 개개인의 본질적 변화를 통해, 남녀의 원래 본성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진정한 남녀평등이 남성의 여성화나 여성의 남성화가 아님을 잘 안다. 이상적 남녀평등은, 남성이 내면에 지닌 여성성에 힘입듯, 여성도 내면에 지닌 남성성에 힘입어, 통합된 남성과 여성으로서 평등하면서도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잘 살려 나가는 것이다. 이런 남녀평등의 생각과 실천이 현실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면, 바이러스가 다시 오건, 외식과 집밥의 균형이 깨지건 간에, 우리는 남녀평등의 집밥을 먹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게 될 것이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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