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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경쟁사 물량을 우리가 납품해야 한다. 5일 안에 준비해라”

팬데믹 재난상황과 기회와 위기의 교차점

박희준 기자

기사입력 : 2020-03-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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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전무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1개월이었습니다. 김우중 회장님의 가르침인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씀도 새삼스러웠습니다"


전화에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긴장감과 성취감 그대로였다. 필자는 지난 2월 말 일주일간 베트남 출장을 다녀왔다. 칼럼 '글로벌 성장통'의 미래 주인공이 될 GYBM 연수생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귀국한 날 날,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향한 항공편이 되돌아오는 초유의 일도 일어나는 등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베트남 체류 당시에 중국과의 국경 봉쇄로 인적·물적교류가 극히 제한되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춘절(春節)이 끝나며 산업이 제대로 재가동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의 전방·후방의 공급망(Supply Chain)이 깨져 여러 측면에서 위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베트남은 아직 부품·소재산업의 발달이 미흡해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도 예외없이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GYBM과정 졸업생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베트남에 자리잡은 글로벌 전자 기업 'KS사(가칭)'의 핵심부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PB(가칭)'사의 베트남 공장에 근무하는 정훈철 주임(가명)을 찾았다. 숨쉴 틈 없는 닷새간의 위기 극복 스토리를 들었다. 지난 2018년 9월에 입사, 1년을 조금 넘긴 정 주임은 구매,자재 출고와 전산 업무를 맡고 있다. 500여 명의 직원 중 20여 명의 현지인들이 부하직원이다.

베트남 최대 명절인 '뗏(한국의 구정)'의 일주일간 휴가를 끝내고 회사로 출근한 다음날이었다. 공장장이 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KS사에 정 주임 회사와 같은 부품을 경쟁 납품하는 중국 회사가 코로나19사태로 공급이 불가능하니 그 경쟁사의 물량을 PB사가 납품을 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소집된 회의에서 논의한 결과 제때 납품하기 위해서는 수십 가지 소재·부품이 빠짐없이 준비돼야 생산에 들어가는 데 재고는 5일분밖에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모자라는 물량이나 대체품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문제는 이 소재들도 상당 부분은 중국에서 공급되는 것들이었다. 방법은 하나, 베트남과 한국에서 소재납품이 가능한 회사를 찾는 것 밖에 없었다. 정 주임은 그 때부터 업무는 부하직원들에게 맡겨 두고 가능한 회사를 찾아다녔다. 해당 소재나 대체 가능 소재를 찾아 20여 개 업체를 방문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마감일 하루를 남겨놓은 4일차에 찾아간 업체 2곳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가 있었다. 정말 쾌재를 불렀다. 성취의 기쁨이었다.

경쟁사의 물량이 우리 회사로 넘어 오는 엄청난 ‘기회’, 그러나, 정작 그 물량을 납품하지 못하면 다른 '위기'로 반전될 상황이었다. 생산중단이나 납품이 지연되면 수십억 원의 금전피해는 물론,신뢰관계가 무너져 회사에 큰 타격이 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일을 잘 헤쳐나간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회사에서 전산팀도 맡고 있습니다. 평소 자재의 투입과 수급 예측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생산팀이나 자재입고를 주문하는 회사와도 수시로 자료를 주고받으며 지내온 게 큰 힘이 됐습니다. 적정 재고 유지와 적시 입고·출고에 대해 대화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어떤 회사는 담당 매니저가 베트남 분이었는 데 GYBM에서 배운 강도 높은 현지어 실력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번에 이 일을 겪으면서 평소서로 주고받는 관계 유지가 회사 내부만이 아니라 거래업체까지도 내 일같이 도와주는 힘이 되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우리한테 납품하는 회사라고 깔보지 않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군대에서 소대장 복무를 하면서 늘 '대안(플랜B)'을 준비하는 습관도 힘이 됐습니다'라는 의미 있는 소감을 내놓았다.

연수 1년 동안 베트남어 공부로 힘들었다고 푸념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는 "전무님, 매주 시험 치고 그 결과를 전체에 공개하는 제도로 받은 스트레스는 말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역설로 그때 참아내고 성적도 올린 것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버텨내는 큰 힘이 됐습니다. 군대생활과 1년간의 한국 직장생활, 베트남 연수 때의 어려운 상황 체험 등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자산이 됐습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정 주임의 첫 인연과 작은 기억이 생각났다. 정 주임은 우리 사무실과 거래하는 인쇄물 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GYBM 교육자료를 보고 지원했다. 흔치 않은 인연이 됐고 이후에 필자의 서울 특강자리에 청강생으로 와서 강의도 듣고 꼭 합격하고 싶다는 의지로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한 기억이 새롭다.

마지막으로 김우중 회장님의 생전의 당부 말씀이 생각났다. "박전무! 연수기간 중에 술도 한 잔 먹는 기회도 있겠지만, 일요일 저녁에는 음주하지 않도록 지도해 줘"

연수생들에게 다음 일주일을 '준비'하는 습관을 만들도록 당부하신 것이다. 대우창업 53주년에 고인(故人)의 산소에서 마음으로 보고를 드려본다. "그 말씀을 실천한 리틀 대우맨이 여기 있습니다. 회장님!"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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