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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한은의 증시 개입과 ‘동학개미’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3-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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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에서 '동학개미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1989년 봄 증권시장은 대단했다.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 1000포인트를 돌파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증권시장으로 달려들었다. 월급쟁이들은 서로 보증을 서주며 보험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다. 농민은 소 팔고, 논 팔아 투자했다. 서민은 땅 팔고, 집 잡혀 투자하기도 했다. 어떤 중소기업은 아예 기업을 처분한 돈으로 투자를 했다.

점심 때 식당에서도 주식, 퇴근길 소주잔 앞에서도 ‘주식 이야기’였다. 어느 기업이 공개를 한다고 하면 수천억 원의 주식청약자금이 몰려들었다.

이 무렵에 생긴 용어가 있었다. ‘개미군단’이다. 돈을 싸들고 증권시장으로 몰려드는 투자자들이 마치 개미떼 같다며 붙인 이름이었다.

이들은 거액투자자나, 상주투자자와 비교하면 자금력이 보잘것없었다. 그래도 숫자가 워낙 많았다. 무시할 수 없는 고객이었다. 증권회사의 약정수수료 수입을 짭짤하게 올려줬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개미’라는 말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군단’을 빼고, ‘개미’라고 부르고 있다. ‘슈퍼개미’, ‘황제개미’, ‘스마트개미’라는 진화된 용어까지 나왔다.

하지만 개미는 애당초 잘못된 표현이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따지지 않아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떠올려야 개미다.

반면, 증권시장에 몰려든 개미는 ‘떼돈’을 노렸다. 개미는 은행 정기예금 금리인 ‘공금리’ 따위에 만족할 리 없었다. 적어도 공금리의 몇 갑절 정도는 노리고 주식을 샀다.

‘진짜 개미’가 있기는 했다. 주식저축을 하거나, ‘펀드’에 만기 때까지 돈을 잠겨두는 투자자들은 진짜 개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드물었다. 많은 개미는 이른바 ‘한탕’을 노렸다.

게다가, 당시 개미는 ‘재미’를 볼 수 없었다. 달아올랐던 증권시장이 한국은행의 투자신탁회사에 대한 ‘특융(特融)’을 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1000포인트를 돌파했던 주가지수가 바닥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자 급기야는 한국은행이 투자신탁회사에 특별융자를 하게 된 것이다.

그해 연말의 ‘12∙12 조치’였다.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 주식을 무제한 사들이기로 한 조치였다. 공교롭게도 전두환 군부의 ‘12∙12 쿠데타’와 같은 날 한은의 발권력이 동원되고 있었다.

한은은 투자신탁회사에 직접 돈을 대줄 수 없다. ‘재할인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은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다시 투자신탁회사에 대출하는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그랬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주식값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끝없이 추락했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대한∙국민 등 3개 투자신탁회사는 파산하고 말았다.

지금, 한은이 스스로 ‘양적완화’라고 인정할 정도로 돈을 풀고 있는 가운데 ‘동학개미’라는 새로운 ‘개미’가 등장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떨어지는 주식값을 받치기 위해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대면’ 거래가 많아졌는데도 ‘개미’다. 실제로 주식활동계좌가 최근 들어 110만 개나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그렇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별다른 ‘호재’가 없는 상황이다. 되레 ‘코로나 19’ 때문에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로 뒷걸음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동학개미’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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