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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창업의지’ 꺾는 대기업 ‘연봉 공개’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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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자료사진.
몇 해 전 사업을 정리한 이 모씨(62·서울)는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작은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 투자자들의 출자금 등으로 창업을 한 것이다.


초기에는 되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매출이 생각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돈도 잘 돌지 않았다.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것이다.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이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 ‘연봉 삭감’이었다. 7000만 원 가량인 연봉을 4000만 원 정도로 깎은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감봉’을 하고도 그것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가끔 발생했다. 그럴 때는 아예 ‘봉급 반납’이었다.

그래도 20명 남짓한 직원에게는 봉급을 꼬박꼬박 지급해야 했다. 추석이나 설날을 앞두고는 더욱 걱정이었다. 자기는 받지 못하더라도 직원들에게는 1년에 한 번이라도 상여금을 마련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희망과 의지로 5년 가까이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아파트마저 처분한 채 좌절해야 했다.

이씨와 같은 중소기업 사장이 아마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경영이 어려워서 자기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기가 부담스러운 사장이다. 그러면서도 밤낮 없이 뛰어야 하는 사장이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59개 대기업집단 240개 계열회사 기업인의 지난해 보수를 조사한 결과, 연봉을 5억 원 이상 받은 기업인은 79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21명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조사에 따르면, 어떤 기업의 경우는 스톡옵션을 행사, 163억5000만 원이나 받고 있었다. 기업의 오너가 아니면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은 전문경영인도 여럿이었다.

이같이 연봉이 공개되는 것은 대기업들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누구의 연봉이 얼마나 된다는 등 다른 대기업과 ‘비교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들이 많았다.

연봉 공개는 또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간단치 않은 ‘반기업정서’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임금 협상 때 가뜩이나 높아진 노조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걱정도 벌써부터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주눅이 드는 것은 이씨와 같은 중소기업 경영자일 수 있다. 대기업 임원의 연봉 공개 정책 때문에 중소기업 임원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연봉 5억 원은커녕, 그 10분의 1을 받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임원은 허탈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더 있다. 정부는 일자리 대책의 하나로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자금까지 대출해주고 있다.

그러나 창업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도 그런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업을 해보겠다는 ‘창업 의지’를 접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 임원의 연봉은 여전히 공개되고 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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