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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너무 온정적"…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걸맞은 처벌 받아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84회)] 되풀이되는 춘향전

한성열 기자

기사입력 : 2020-05-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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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아직도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비뚤어진 성의식이 춘향전에 나오는 변학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천인공노할 성범죄를 저지른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의 행정을 맡은 시장이 집무실에서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직을 사퇴하는 사건이 일어나 또 한 번 전 국민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부산시장은 성추행을 이유로 광역단체장에서 물러난 두 번째 사례가 됐다. 대통령까지 바라보며 정치적 장래가 밝았던 한 도지사가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사건이 터진 지가 불과 2년밖에 안 됐다.


이번에 부산시장으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한 여성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다"면서 다음과 같이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저는 이달 초 오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면서 "업무 시간이었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갔으나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라고 전했다. 시장 자신이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 강제추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면서 사퇴를 하였으니 사실일 것이다. 지인에게 "그때 정신이 나갔나 보다"라고 회한(悔恨)의 말을 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고, 불행하게도 어느 특정 집단이나 영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예술계, 교육계, 법조계, 종교계를 막론하고 어느 한 곳 성범죄에서 떳떳한 곳이 없다. 물론 그 분야에서 극히 소수의 사람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 전체에 성범죄가 만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성범죄가 일어나는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당사자가 져야한다. 단지 "정신이 나갔었다"라든지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상투적인 변명으로 피해갈 일이 아니다. 반드시 자신이 저질은 범죄에 걸맞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성범죄 'N번방 사건' 충격 잊기도 전에
부산 전 시장 여직원 성추행에 아연실색

그러나 여성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에서 성범죄가 만연한 원인의 하나로 성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온정적이고 관대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 현상은 성범죄에 대해 분노한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는 입법을 게을리하는 입법부와, 법 적용을 안이하게 하고 솜방망이 처벌만을 내리는 사법부의 성 인지 감수성에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도 이미 시인하고 있다.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청원에 답하는 자리를 빌려 "기본적으로 강간 및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법원은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반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해 비판이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데는 우리 문화적 배경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그 당사자와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에 대해 그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안타깝게도 성에 대해 무모한 것을 마치 '남성성'의 상징인 것처럼 미화(美化)까지 하는 경향이 있다. '열 계집 마다하는 남자 없다'라는 속담이라든지 '영웅호색(英雄好色)'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데서도 보듯이 이는 경제력이나 지위 등 권력을 이용해 다수의 여성과 성적 접촉을 하는 것이 마치 남성 개인의 출세를 상징하는 트로피처럼 여겨지는 독특한 문화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전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 중에는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고, 권력자들은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사는 것이 당연시되기까지 했다. 다만 '문화적'이라는 의미는 그런 현상이 일반화·보편화 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문화는 성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가 적용된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전통 문화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이 있듯이,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하지 않도록 엄하게 교육시켰다. 이는 남녀 간의 접촉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데 연유하는 것이다. 이성(異性)간의 자유스런 만남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금기시되는 것으로 여겼다. 지금은 남녀공학이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성에 대해 제일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 때 소위 남학교와 여학교로 분리해 교육을 하였고,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은 불량한 학생들이나 하는 비행(非行)으로까지 치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에 대한 호기심을 음성적으로 달래야하기 때문에 성에 미숙한 동년배들에서나 혹은 건전하지 못한 동영상에 의지해야 한다. 결국 성은 밝고 당연하고 건강하게 즐겨야 하는 '양지(陽地)'의 활동이 아니라, 음침하고 떳떳하지 못한 비밀스럽게 만족해야 하는 '음지(陰地)'의 활동으로 숨어들게 된다.

​강제 추행 당한 여성 "인생 뿌리 채 흔들"
5분 동안 짧은 면담서 불필요한 신체접촉

이런 관념은 부부간에도 '내외(內外)'를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관습에도 스며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은 공간적으로 남편이 주로 거주하는 사랑채와 여성과 아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안채가 분리되어 있었다. 성적(性的) 관계는 단지 자식을 생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며 성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한 합방은 가능한 한 자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성욕을 만족하려는 것은 '본능(本能)'이다. 이는 배워야만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억압한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본능은 적당하게 그리고 정당하게 만족되어야 한다. 결혼한 경우, 성욕은 부부간의 원만한 성생활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하지만 부부간의 성적인 관계를 억압하거나 부정적(否定的)인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에서 성욕은 결국 가정 밖으로 나가게 된다. 특히 남성의 경우, 가정 안에서 해결 못한 성욕을 푸는 배출구를 가정 밖에서 찾게 된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기생문화(妓生文化)' '첩문화(妾文化)'가 발달하고, '유흥문화(遊興文化)'가 번성한다. 그리고 남녀간에 건전하고 개방적인 놀이문화가 발달하기보다 퇴폐적인 유흥문화가 단속을 비웃듯이 업종을 바꾸어가면서 번창하는 것도 다 이런 문화적 기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일부 한국 남성들에게는 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가 있다. 우선 집안의 여성, 즉 어머니와 누이, 딸 그리고 부인은 '성녀(聖女)'다. 이들은 성(性)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관되어 생각해서도 안 된다. 반면에 가정 밖의 여성은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여성, 즉 성욕의 대상이 되는 '성녀(性女)'이다. 그래서 외부의 여성들에게는 직장에서나 다른 사석에서 성적인 농담을 건네거나 추근대는 것이 오히려 남자다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남성들이 있고, 이런 행동에 대해 관대하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남성들의 성과 관련된 추문들은 다 이런 이중잣대에 기인한 것이다.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도 젊은 여사원들은 상사들 옆에 앉아서 술을 따라주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학교의 회식 자리에서는 젊은 여교사는 교장에게 술을 따라주라는 교감의 압력을 받는 경우가 아직도 존재한다. 아직도 같은 직장의 여성동료를 '기생(妓生)'과 구별하지 못하고 수청을 강요하는 문화의 흔적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번에 사퇴한 부산시장도 회식자리에서 유독 자신의 옆에만 여성들을 앉혀서 문제가 됐던 인물이다.

​교육·종교·교육계 등 성범죄 널리 퍼져
전문가 "사법부 성인지 감수성에도 책임"

우리 문화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문화이다. 이제는 지위와 성(性)에 관계없이 평등한 관계에서 남녀간의 아름다운 성적 관계를 지향(指向)하고 있다. 이 관계에서는 자발적인 동의가 핵심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 춘향전의 변학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남성들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그 지위를 성적 욕망 충족의 도구로 삼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부하 여직원을 불러 집무실에서 성추행을 자행하는 변학도를 만나야 하는지 안타깝다.

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그런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각자 내 마음속에도 그런 경향이 있는지를 조심해서 검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화적 특성이 '내재화(內在化)' 되기 때문에 부지불식 간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문화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文化)'의 원래 의미는 '경작하다(cultivate)'에서 유래한 것이다. 문화인은 '자신의 욕망의 밭을 잘 경작하여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철학자가 꼭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문화인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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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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