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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쪽동백과 때죽나무

백승훈 기자

기사입력 : 2020-05-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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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비 온 뒤의 숲길을 걸었다. 밤새 내린 비로 습기를 흠뻑 머금은 숲은 대지가 피어 올리는 흙냄새와 신록의 수목들이 뿜어내는 나무 향기, 꽃향기로 가득하여 싱그럽기 그지없다. 그 중에도 낮은 기류를 타고 자욱하게 밀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는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초록이 짙어지는 오월의 숲에 들면 아카시아를 비롯하여 찔레꽃, 산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등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눈에 띈다. 꽃의 색은 꽃의 생김새, 향기, 무늬 등과 함께 상리공생(相利共生)하는 곤충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그런 면에서 흰색은 그리 매력적인 색은 아니다. 대신 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의 색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대신 꿀이나 꽃가루를 만들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들에게 충분히 보상해준다. 곤충들에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숲길을 걷다가 잠시 지친 다리를 쉴 요량으로 물가를 찾았다가 개울가에 하얗게 떨어져 내린 꽃송이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순백의 꽃송이들이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바닥을 덮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가지마다 가지런하게 순은의 작은 종을 닮은 흰 꽃송이를 가득 피워 달고 서 있는 것은 쪽동백나무였다. 한 줄기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자 작은 꽃송이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눈송이처럼 꽃송이들이 화르르 떨어져 내렸다. 은은하고도 맑은 꽃향기가 훅하고 코끝을 스치는 순간, 세상은 잠시 숨을 죽인 듯 사방이 고요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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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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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마다 순은의 작은 종을 닮은 흰 꽃송이를 가득 피워 달고 있는 쪽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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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위에 떨어져 있는 쪽동백.

쪽동백나무는 때죽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가을이 되면 커다란 잎사귀는 노란빛의 단풍이 든다. 5~6월에 새로 난 가지 끝에 기다란 꽃대 양쪽으로 순백의 작은 꽃들이 지면을 향해 가지런히 피어난다. 수피도 아름답고 꽃 또한 아름다워서 요즘은 관상수로도 많이 심어 조금만 눈여겨보면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도시의 공원 같은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꽃이다. 사람들은 곧잘 쪽동백과 때죽나무꽃을 혼동하기도 한다. 꽃의 생김새도 비슷하고 피는 시기도 같으니 그럴 만도 하다.

때죽나무 꽃을 볼 때면 나는 악양에 홀로 사는 박남준 시인이 떠오르곤 한다. 오래전 시인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차를 타고 구례에서 악양까지 가는 동안 뒤따라오던 섬진강의 은빛 물결은 지금도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악양에 이르러 시인이 사는 마을 쪽으로 차 머리를 막 돌렸을 때였다. 시인은 차창을 내리고 길가 산자락 끝에 서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나지막한 언덕에 때죽나무 한 그루가 흰 꽃송이를 가득 피워달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때죽나무 꽃도 아름다웠지만 그 꽃의 아름다움에 감격한 듯한 시인의 소년 같은 표정에 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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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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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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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 꽃.


때죽나무는 가느란 잔가지가 촘촘히 나는데 반해 쪽동백은 잔가지도 투박하고 이리저리 굽어있다. 때죽나무 잎은 작고 잎면이 윤기가 흐르지만 쪽동백의 잎은 크고 좀 거칠어 언뜻 보면 목련나무 잎과 닮았다. 꽃은 흰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을 달고 땅을 향해 피어 있는 모습이 선 듯 구분이 쉽지 않지만 쪽동백이 좀 날씬해 보이고 때죽나무꽃은 통통한 느낌을 준다. 두 꽃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꽃이 달리는 모양을 살펴보는 것이다. 때죽나무꽃은 낱개의 꽃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피는데 반해 쪽동백 꽃은 기다란 꽃대 위에 가지런히 꽃차례를 이루어 피기 때문이다.

신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요즘, 순백의 꽃송이들을 가득 달고 선 쪽동백나무나 때죽나무 꽃그늘 속을 걸어보는 일처럼 근사한 일도 없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맑은 꽃향기를 흩으며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발등으로 내려앉는 꽃송이들의 군무도 아름답지만 꿈속처럼 따라오는 수천수만의 은종 소리를 듣다보면 이 좋은 봄날이 순간에 지나가 버릴 것만 같아 눈 한 번 깜빡이는 일도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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