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G 칼럼] 코로나 ‘숫자 인간’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5-26 00:10

center
뉴옥타임스가 보도한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1000명. 뉴시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24일자 1면 전체를 할애, 코로나19 사망자 1000명의 이름을 실었다는 소식이다.


사망자 1000명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 직업 등 간단한 프로필과 함께 게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단순한 명단 속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다”는 부제목도 달았다고 했다. 미국의 언론은 이렇게 사망자의 명단과 인적사항을 확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대한민국 언론은 ‘○○번 환자’였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31번 환자는 어머니 노원구 28번 환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였다. ‘감염 경로’는 “미추홀구 15번→남동구 17번→미추홀구 21번→미추홀구 24번→관악구 56번” 등이었다.

미국 언론처럼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언론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번 환자였다. ○○번 여성 또는 남성 환자가 사망하고 있었다.

지금뿐 아니었다. 몇 해 전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때도 환자에게 ‘일련번호’가 붙고 있었다. “○번 환자 퇴원”이라는 식이었다.


환자의 인적사항을 보호하고, 그 가족과 친지 등의 사생활을 고려해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목숨을 ‘일련번호’로 표현하는 것은 어쩐지 가벼운 느낌을 주고 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숫자 인간’에 대한 ‘쓰라린 과거사’가 있다.

과거, 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은 ‘전리품’으로 분배되고, 가축처럼 거래되어야 했다. 그 가격이 ‘은 18냥, 또는 우(牛) 1두’였다. 멀쩡한 사람을 소 한 마리 값에 거래한 것이다.

사람이 아니었으니, 누구에게 선물로 줘버리는 일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려죽여도 그만이었다. 그래도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다.

청나라는 나중에 ‘몸값’을 받고 조선 사람들을 풀어줬다. 몸값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혹한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노예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었다. ‘노예 명부(名簿)’에 ‘박 일(朴一), 박 이(朴 二), 박 삼(朴 三)…’ 하는 식으로 올렸다. ‘한×, 두×, 세×’ 등으로 헤아린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숫자만 필요했을 뿐이었다.

일제 때 악명 높았던 ‘731부대’는 또 어떤가. 끌려온 사람은 곧바로 ‘마루타’, ‘통나무’가 되어야 했다. ‘통나무’ 따위에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가둬두었던 ‘마루타 ○개’를 꺼내서 ‘생체실험’을 하면 그만이었다.

일제 때 강제 징용에 끌려간 조선 사람들도 사람이 아니었다. ‘군수품’이거나 또는 ‘소모품’이었다. 군수품에게 ‘이름 석 자’는 불필요했다. ‘한☓, 두☓, 세☓…’ 등으로 충분했다.

이랬던 ‘과거사’가 있었는데 21세기 대한민국은 ‘○○번 환자’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말레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