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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장수 서울시장' 박원순은 누구인가…한국 시민운동 역사의 산 증인

인권변호사→시민활동가→ 3선 성공 최초 서울시장

지원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7-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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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 시장 생전 브리핑 모습.


실종됐다 결국 숨진 채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역사상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자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산 증인으로 여권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이다.

박 시장은 20년이 넘게 시민사회에서 활동해온 한국 시민운동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의 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에는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시골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친형을 따라 상경해 경기고에 입학했다.

그는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4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제적됐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수학한 박 시장은 한국에 돌아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낸다.

1983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박 시장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시국사건들의 변론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등의 변론을 담당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 중 하나로 활동했다.

박 시장은 1994년에는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면서 시민운동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 단체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시민운동을 진화시켰다. 이 시기에 일어난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천·낙선운동 등 굵직한 시민운동마다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박 시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 실패해 물러난 뒤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박 시장은 취임 이후 시민활동가·인권변호사라는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시정의 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의 남은 임기 2년 8개월을 넘겨받은 박 시장은 '디테일에 능하다'는 평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사안을 꼼꼼하게 챙겼다.

박 시장은 재선에 당선된 이후에도 반값등록금과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도시재생 등 자신이 꿈꿨던 수많은 사회혁신 정책을 하나 둘씩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박 시장은 2017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 중도포기했으나, 서울시 최초로 3선 시장 고지에 오르면서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박 시장은 '서울 10년 혁명 완수'라는 큰 목표 아래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시민과의 협치', '경제', '평화와 안보' 등 굵직한 정책을 내놓았다. 협치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서울시 위원회는 2011년 103개에서 2017년 7월 189개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1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면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방역에 성공한 서울시가 '익명검사', '고위험군 선제검사' 등을 제시하며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의 표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직접 발표한 정책은 지난 8일 '서울판 그린뉴딜'이었다. 당시 박 시장은 "세계가 혼란스럽고 방황할 때 저희는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가면 새로운 산업화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이후를 내다보는 대대적 친환경 정책의 밑그림을 내놨다.

하지만 다음날인 9일 오전 박 시장은 이미 공지했던 일정까지 모두 취소하고 잠적했으며, 오후에 딸의 실종 신고를 받고 북악산 일대 수색에 나선 경찰에 의해 10일 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은 '서울시 10년 혁명' 완성을 1년 2개월, 대선을 1년 6개월 남짓 남겨두고 서울시장 임기 3180일째인 2020년 7월 9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


지원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resident58@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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