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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집값과 반비례하는 지지율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07-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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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의금부에서 이순신 장군을 체포하러 한산도에 갔을 때, 장군은 ‘부재중’이었다. 가덕도 앞바다에서 왜적 무찌를 작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의금부 관리들이 온 까닭을 안 백성은 통곡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함거에 실려 압송되기 시작하자, 온통 눈물바다였다. 지나는 고을마다 백성이 엎드려서 길을 막으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순신이 3도 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어 호남 쪽으로 내려갈 때, 백성은 또 엎드려서 길을 막고 있었다. 이제 다시 살게 되었다며 환호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오늘날처럼 여론조사가 있었다면, 이순신은 ‘지지율≒99%’였을 게 틀림없었다.

고려 때 ‘희한한 데모’가 벌어졌다.

진주 부사 왕해(王諧)가 임기를 마치고 동도 유수로 자리를 옮기려 하자, 백성이 몰려가서 통곡하며 유임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백성은 왕해를 1년만이라도 더 진주에서 일하도록 해달라고 조정에 건의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그 ‘유임 데모’를 받아들였다. 발령을 취소, 진주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 왕해 역시 ‘지지율≒99%’였을 것이다.

‘희한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제주도인 탐라를 다스리던 최척경(崔陟卿)이라는 관리가 교체되어 돌아갔는데, 백성이 이를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탐라 담당인 전라 안찰사가 그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자, 임금은 최척경에게 비단을 상으로 내리고 보직을 ‘원위치’시켰다.

반란을 일으켰던 백성은 최척경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준비해서 영접했다. 들고 있던 창과 칼을 버리고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최척경도 ‘지지율≒99%’쯤 되었을 만했다.

모두 정치를 잘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지도자가 훌륭하면 백성은 이처럼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조선 초 연안 부사 기건(奇虔)은 재임기간 동안 ‘붕어요리’를 절대로 먹지 않았다. 붕어 요리를 좋아했던 전임 부사를 비난하는 ‘대자보’가 나붙었기 때문이다. 기건은 제주 목사로 가서는 ‘전복요리’를 입에 대지 않았다.


음식 한 그릇을 멀리한 것은 위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건은 그 정도로 백성을 쉽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1주일 사이에 3%포인트 하락, 47%로 낮아졌다는 보도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6주 연속 미끄럼이라고 했다. 지지율이 총선 ‘압승’ 후 71%까지 치솟았지만 어느 새 이같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평가는 5%포인트 높아진 44%로, 3월 셋째 주의 42% 이후 다시 40%대로 상승했다고 했다.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분석이었다. 집값과 반비례하는 게 대통령 지지율인 모양이었다. ‘7‧10 부동산 대책’이라는 것을 또 나왔지만, 과연 집값을 꺾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할 일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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