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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집안에 가을을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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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쨍한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리다. 투명한 은빛 햇살은 눈이 부시고 나뭇잎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쎼시봉 가수 송창식이 곡을 붙여 부른 미당의 시 ‘푸르른 날’이란 시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불한불서(不寒不暑). 춥지도 덥지도 않은 요즘이야말로 일 년 중 가장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도 집 밖을 나설 때면 마스크부터 챙겨야 하는 요즘이다 보니 계절을 즐기기는커녕 외출도 꺼려지고 불요불급한 일이 아니면 사람 만나는 일도 가급적이면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직접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가끔 오랫동안 소식 없던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기도 한다. 긴 시간 격조했던 터라 통화는 자연스레 길어지곤 한다. 때로는 서로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그래도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래전에 함께 여행을하던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목소리의 톤이 살짝 올라가기도 하지만 요즘의 형편을 물을 때면 공연히 목소리에 힘이 빠지며 우울감에 젖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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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먹고 사는 일이 고단한 요즘이다 보니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동문서답하듯 꽃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오늘 아침에 산길에서 만난 쑥부쟁이나 물봉선, 며느리밥풀꽃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천변에서 만난 유홍초나 왜가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제는 고교 동창이 전화를 해서 가까운 꽃집에 가서 국화 화분을 사다 창가에 놓아둔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넌 아직도 여전하구나!’하는데 그 말의 뉘앙스가 묘했다. 부러워하는 것도 같고,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꽃을 좋아하기는 해도 직접 꽃을 가꾸거나 집안에 들이지 않는다. 꽃을 가꾸기엔 천성이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원래 꽃이란 집안이 아닌 산이나 들에서 피는 것이니 꽃이 보고 싶으면 산이나 들로 나가서 보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때는 꽃을 집안에 들여놓고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하늘에 일었다 스러지는 구름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게 사람의 생각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곧잘 우울감에 시달리곤 한다. 우울감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숲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요즘은 숲을 찾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도심보다 숲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숲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걷는 일은 나를 더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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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을 떨쳐버리는 데엔 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집 가까이에 있는 화원엘 갔더니 국화가 한창이다. 작은 국화 화분을 구입해 도봉산이 바라다보이는 창가에 놓았더니 온 집안에 가을향기가 가득해진 느낌이다.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뇌파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꽃을 보면 뇌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알파파가 활성화 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불안감이 줄어든다. 이처럼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우울감이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지지만 직접 꽃을 키우면 보다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꽃을 키우려면 많은 손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아무리 작은 화초라도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물을 주고 정성들여 보살피면서 꽃을 키우는 동안 식물과 교감하며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가에 놓아둔 국화가 만발한 때쯤 우리들 얼굴에도 마스크를 벗고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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