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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야스쿠니의 아내’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0-10-18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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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에서 ‘야스쿠니의 처(妻)’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야스쿠니신사에 잠들어 있는 영령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전쟁미망인’을 ‘야스쿠니의 처’라고 미화한 것이다. 소위 ‘천황’을 위해 죽은 전사자들인 만큼 그 ‘미망인’도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일본은 그러면서 야스쿠니의 처에게 ‘재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심하게 감시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생과부’로 늙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본은 전사자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는 장면을 라디오로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전쟁터로 내몰린 젊은이들을 죽음을 미화한 것이다. TV라는 게 없던 시절이어서 라디오였다.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올리는 이 제전에서 신이 되어 광영의 자리에 오르시는 영령들이여. 지금 여기 감격의 눈물에 젖어서 그대들의 성스러운 의식을 지켜보는 유족들의 심경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하지만 전사자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라디오 중계에도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유가족의 울음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들은 유가족이 오열하면서 “내 아들 돌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방송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마이크를 감싸야 했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

이른바 ‘가미카제’라는 이름으로 ‘자살비행’을 한 첫 번째 ‘자살자’는 ‘세키’라는 대위였다. 일본은 그 세키를 ‘군신(軍神)’으로 둔갑시켰다. 여학생들에게 군신 세키 대위의 사진을 방에 붙여놓거나 품에 넣고 다니도록 한 것이다.

일본은 전쟁을 하는 동안 군인들이 학생을 인솔, 야스쿠니신사를 ‘집단참배’시키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제국주의 정신’을 심어줬던 것이다.

‘야스쿠니’는 한자로 ‘정국(靖國)’이다. ‘편안할 정(靖)’을 쓰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입장객에게 나눠주는 안내문에도 “국가를 평안하게 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글이 들어 있다고 한다.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일본은 ‘야스쿠니의 처’를 만들고, 순진한 여학생의 마음에까지 전쟁과 적개심을 심어주고 있었다.

일본은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전쟁을 ‘15년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한 사실도, 자기들이 패전한 사실도 15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항복’을 한 8월 15일도 ‘패전’이 아니라 ‘종전기념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야스쿠니신사에 ‘신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공물을 바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그대로 따라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가 총리의 정책도 아베 전 총리를 닮을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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