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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성적지상주의가 '학폭' 불렀다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1-02-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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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용 편집국 부국장
고(故) 최숙현(철인 3종), 심석희(쇼트트랙), 김은희(테니스) 코치…. 서로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지만 대표적인 과거 '학교폭력' 피해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숙현은 동료들에게서 가혹행위를 받은 후 극단적 선택을 했고, 심석희는 성폭행 피해사실을 공개한 후 스포츠계의 '미투'를 촉발시켰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쌍둥이 배구 스타(이재영·이다영)가 학교 폭력 과거가 알려지면서 한국 국가대표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은 하계·동계 올림픽 10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이지만, 신체·언어 폭력이 만연하다"고 꼬집었다.

세계 10위 스포츠 강국 한국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우리 사회는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대회 등 국가간 대항전 성격이 짙은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열광했다. 스포츠 강국이라는 자부심에 성적지상주의에 가려진 학폭의 그늘을 외면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폭력을 용납하거나 묵인하는 태도를 견지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자질인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가르치는 데 소홀히 했다. 스포츠맨십은 스포츠맨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정신자세를 말한다. 체육학 사전에 따르면 "훌륭한 스포츠맨십을 가진 선수는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비정상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항상 상대편을 향해 예의를 지키는 것은 물론 승패를 떠나 결과에 승복한다"고 나와 있다. 만일 스포츠를 시작하는 어린 나이에 이 같은 스포츠맨십을 가르쳤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학폭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성적지상주의에 매달린 학교 운동부는 지도자와 선후배간 폭력을 '쉬쉬' 하며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지도자들이 학생 선수들에게 체벌을 주는 것은 당연한(?) 행위로 여겨졌고, 선후배 위계질서에 의해서도 크고 작은 폭력이 암암리에 이뤄져 왔다. 바로 성적지상주의가 스포츠계에 난무하는 학폭을 부른 것이다.

외신들도 한국 스포츠계에 난무한 학폭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두 선수가 학폭으로 물의를 빚은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스포츠강국 한국의 민낯을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데일리메일, 프랑스24, 월드오브발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그리고 일본 스포츠 매체들이 앞다투어 '한국의 인기 쌍둥이 배구 선수, 중학교 시절 학폭으로 대표팀에서 추방'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 스포츠계에 난무한 성폭력이나 신체폭력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학폭이 문제가 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등 정부 기관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고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 들끓는 사회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처방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배구에서 촉발된 학폭은 야구 축구 농구 등 스포츠계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이다. 소속 선수가 연루된 구단 측도 과거와 같은 '제 식구 감싸기'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피해자와 합의를 종용하거나 피해자에게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학폭 가해자가 스포츠계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문제를 '미성숙한 개인의 일탈'로 인식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기 승리에 앞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정신, 스포츠맨으로서의 자질 등을 가르침으로써 보다 성숙한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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