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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문경지교’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1-04-05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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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진나라 임금이 조나라 임금을 자기나라로 초청,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했다. 조나라 임금은 측근인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를 불러서 상의했다. 무신인 염파는 남아서 나라를 지키고 문신인 인상여가 수행하기로 했다.


두 임금은 회담을 앞두고 술자리를 벌였는데, 난데없이 진나라 임금이 조나라 임금의 비파 연주 솜씨를 보고 싶다고 요구했다. 무례한 요청이었지만 조나라 임금은 비파를 뜯어줬다.

그러자 배석했던 인상여가 말했다.

“우리 임금이 악기를 연주했으니, 진나라 임금도 연주해야 할 것이다.”

인상여는 그러면서 은근히 겁을 줬다.

“나는 지금 칼로 나의 목을 찔러 피가 흐르게 할 수도 있다.”

자기 목을 찌른다고 했지만 여차하면 진나라 임금을 벨 수도 있다는 ‘강경 발언’이었다. 진나라 임금도 결국 소부라는 악기를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회담이 시작되자, 진나라 신하가 말했다.


“우리 진나라 임금의 만수무강을 위해 조나라의 성(城) 15개를 넘겨줄 수 없겠는가.”

인상여가 즉시 받아쳤다.

“우리 조나라 임금의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진나라 수도 함양성을 조나라에 넘겨줄 수 없겠는가.”

이랬으니 회담은 계속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조나라는 진나라의 콧대를 누를 수 있었다. 조나라 임금은 인상여에게 상경(上卿)이라는 최고 벼슬을 내렸다.

인상여가 벼락출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염파가 흥분했다. 염파도 같은 상경이지만 인상여의 ‘호봉’이 더 높았던 것이다.

“나는 전쟁터를 무수하게 누빈 공으로 떳떳하게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인상여는 고작 ‘세 치 혀’를 잘 놀려서 나보다 높은 자리를 받았다. 그대로 두지 않겠다.”

인상여는 그런 말을 전해 듣고도 염파를 피했다. 병을 핑계로 결근하고 길거리에서 마주칠 듯싶으면 수레를 돌리도록 했다.

인상여의 생각은 달랐다.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염파와 다투면 진나라에게 이익이 될 뿐이다. 염파와의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 문제다.”

염파는 부끄러웠다. 웃통을 벗은 채 가시나무 회초리를 한 짐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서 사과했다.

염파와 인상여는 이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친구가 되었다. 잘 알려진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다.

그런데 이 ‘문경지교’에 또 하나의 고사성어가 숨어 있다. 가시나무 회초리로 때려달라고 사과한 ‘부형청죄(負荊請罪)’다.

염파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 진정성은 아름다운 ‘문경지교’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이 부동산정책과 관련, 담화와 성명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저희가 부족했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 결자해지 기회를 달라”고 했다.

김종민 최고위원도 “결과적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반면,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부동산가격 상승이 한국적인 현상만은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읍소전략, 뒷북사과”라는 비판이었다. 그래서 돌이켜보는 ‘문경지교’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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