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G 칼럼] 이 시대의 청백리 변영태

이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21-05-05 06:29

center
사진=픽사베이


일석(逸石) 변영태(卞榮泰·1892∼1969)가 대한민국 대표로 유엔총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유학 중이던 아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더니 변영태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이유를 추궁했더니 주머니사정이 어렵다고 털어놓고 있었다.

변영태는 국무총리와 외무부장관을 지낸 ‘고위공무원’이다. 그 고위공무원 아들의 유학 생활이 많이 고달팠던 것이다.

함께 총회에 참석한 대표단 일행은 변영태가 아들에게 몇 백 달러쯤이라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활비까지는 몰라도 용돈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변영태는 그 자리에서 아들을 혼냈다.


“고학을 할 용기가 없으면 당장 귀국해라!”

변영태는 사랑하는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어떤 고위공직자처럼 유학 중인 자녀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송금하는 일은 없었다.

변영태가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출장 준비를 하는데 주위에서 귀띔했다. 필리핀은 날씨가 뜨거운 곳이니 여름옷을 잊지 말고 챙기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변영태는 ‘운임’이 더 들어갈지 모른다며 거절했다. 입고 있던 동복차림 그대로 출국했다.

필리핀에 도착하고 나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수단만 이용했다. 나라에서 지급해준 출장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귀국한 뒤 아껴 쓰고 남긴 출장비 30달러를 반납했다.

변영태는 이후에도 출장 때마다 ‘단돈’ 10달러라도 절약해서 나라에 반납했다. 부하 직원들은 그런 변영태를 ‘변 고집’이라고 불렀다.

장관이 ‘솔선수범’하니까 부하 직원들도 따랐다. 부하 직원들도 모두 변영태처럼 ‘구두쇠’가 되었다. 국고를 낭비하거나 꿀꺽하지 않았다.

영문학자인 변영태는 관직을 물러난 후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호구지책을 해결했다.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고위공무원 출신이 연탄불을 직접 갈아야 정도로 부족하게 살았다.

세상을 떠났을 때의 사망 원인도 ‘가스중독’이었다.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다. 변영태는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와 함께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히고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대학교수 당시 해외 세미나에 딸을 동행했다는 보도다. 딸의 비용은 따로 계산했다고 해명했지만 밥 한 끼를 먹을 때도 그랬을지 국민은 의아해지고 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영국 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부인의 도자기 제품을 외교관 잇갓짐으로 관세 없이 들여와서 판매했다는 보도다.

변영태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어쩌면 혼 좀 났을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

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