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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더기 디폴트옵션, 아니함만 못하다

최성해 기자

기사입력 : 2021-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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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증권부 팀장
고백을 하겠다. 증권기자이지만 퇴직연금에 관심이 전혀 없다. 부끄럽지만 가입한 퇴직연금이 확정급여형(DB)인지, 확정기여형(DC)인지도 잘 모른다. 하루하루 바쁘다는 핑계로 노후를 준비하는 귀중한 돈을 무관심 속에 방치한 셈이다.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계좌를 조회한 것은 요즘 증권가가 디폴트옵션으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은 크게 운용주체가 회사인 DB형과 근로자인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는 DC형으로 나뉜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의 상품가입이 없어도 자동으로 연금자산을 운용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를 뜻한다. 근로자가 일정 기간 퇴직연금을 굴릴 상품을 선택하지 않아도 회사가 사전에 정한 적격 상품에 자동가입하는 것이다. 디폴트옵션은 DC형에만 적용된다.

뜬금없이 디폴트옵션이 증권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디폴트옵션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며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상임위에서 논의 중이다. 최근 국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디폴트옵션은 증권업계와 은행권의 힘겨루기 대상이 되고 있다.


은행권이 디폴트옵션 도입에 펄쩍 뛰며 반대하는 이유는 디폴트옵션의 원금손실 가능성 때문이다.

노후준비의 최후의 보루라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원금손실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퇴직연금의 원금을 지키기 위해 디폴트옵션에 제시되는 적격상품에 예금같은 원리금보장상품을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하면 현행 퇴직연금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형 퇴직연금 제도 아래 DC형 상품유형은 원리금 보장과 실적배당형으로 나뉜다. DC형에서 원리금 보장상품이 싹쓸이하며 실적배당형 상품은 있으나 없으나만 존재로 전락했다.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의 '2019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DC형은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은 94.6%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수익률이다. 저금리 기조로 원리금보장상품으로 편입되는 예금금리가 1%대로 낮아졌다. 이것저것 수수료를 떼면 연 1%대의 수익률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디폴트옵션은 과도한 원리금보장 쏠림에 따른 쥐꼬리만한 수익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도입이 추진되는 제도다. 연 1% 안팎의 수익률로 은퇴 이후 노후준비가 불가능하다는 절박함도 깔렸다.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필요성에 눈뜬 미국은 '적격디폴트상품(QDIA)', 호주는 '마이수퍼'라는 이름으로 디폴트옵션을 시행하고 있다. 연평균수익률은 각각 7%, 6.8%를 기록하면서 노후준비의 종잣돈을 키우고 있다.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의 선택권이 없다는 은행권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금손실이 불안한 가입자 디폴트옵션 제도가 적용되기 전 원리금보장상품을 직접 선택하면 된다. 그래도 원금보장이 불안하다면 디폴트옵션으로 성공한 선진국에서 검증된 상품유형에 상장지수펀드(ETF) 등 안정성을 갖춘 유형을 추가하면 원금손실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이쯤에서 나의 DC의 운용상품수익률을 공개한다. DC형 원리금보장유형인데, 운용상품수익률은 연 0.46%로 1%도 안된다. 수익률로만 보면 퇴직연금이 노후준비에 힘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셈이다. 노후준비의 꿈을 갖도록 선진국에서 검증된 디폴트옵션제도로 수익률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최성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ad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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