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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숲속의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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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창가에 서면 온통 초록 세상이다. 초목이 우거져 짙어질 대로 짙어진 도봉산의 푸르름이 시원하게 펼쳐져 문자 그대로 녹만창전(綠滿窓前)이다. 비가 내려 후끈 달구어진 공기가 잠시 서늘해졌다 해도 만개한 접시꽃처럼 이미 계절은 여름의 중심으로 치닫는 중이다. 6월은 어느 때보다도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여서 만물이 다채롭게 변화하며 초목들은 껑충 키를 키운다. 가로수 가지들의 한껏 풍성해진 잎사귀들로 인해 도로가 좁아진 것처럼 보이고 우리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어느새 꽃들은 피어나 보도 위로 꽃잎을 흩어놓기도 한다.


연일 30℃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의 더위가 이어지면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에도 수많은 꽃이 지고 또 피어났다. 비가 그치고 산들바람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천변으로 나갔을 때 제일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둑의 경사면에 지천으로 피어난 개망초 사이로 껑충하게 키를 높인 접시꽃이었다. 붉은색부터 분홍, 자주, 흰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을 뽐내며 피어 있는 접시꽃을 보면 오래 전 글벗이 보내온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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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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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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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접시꽃이 피었습니다. 선홍빛 넝쿨장미의 화려함에 눈빛이 흐려져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눈에 띈 접시꽃이 참 고왔습니다.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세운 꽃대 틈틈이 어느 광고에 나오는 예쁜 접시를 닮은 꽃들에게서 한동안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있잖아요. 민무늬의 접시가 꽃밭 속을 구르다 보면 고스란히 꽃무늬가 찍혀지는…."

접시꽃 외에도 꽃양귀비, 금계국, 수레국화, 갈퀴나무꽃, 분홍토끼풀, 토끼풀 등 눈길 닿는 곳마다 꽃이다. 제아무리 찬찬히 주변을 살피며 부지런히 움직여도 여기저기 출몰하는 게릴라처럼 피어나는 꽃들을 다 살필 수는 없다. 그런데도 꽃들에게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오랜 추억을 소한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만 볼 수 있는 게 꽃이기 때문이다. 처음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열정적으로 꽃들의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생태를 공부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헛된 욕심이란 걸 깨닫고 꽃의 아름다움에 천착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식물학자도, 생태학자도 아닌데 굳이 그 많은 것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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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바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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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패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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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이런 나와는 달리 끈질기게 숲을 관찰하여 숲에서 우주를 본 사람도 있다.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의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그는 미국 테네시주 남동부의 산악지대의 오래 된 숲에 지름 1m 남짓한 원을 그린 후 ‘만다라’로 명명하고, 그 안의 변화를 1년 동안 관찰하며 기록하여 책을 썼다. 저자는 어느 날 티베트 승려들이 모래로 만다라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만다라 안에 우주 만물이 들어 있듯이 자신도 극히 작은 공간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우주를 탐색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좁은 공간을 끈질기게 관찰하면서 꼼꼼히 기록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이어갈 뿐이다. 내가 꽃을 보고 호들갑을 떨거나 추억에 잠겨 눈물을 흘리거나 상관하지 않았다. 나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생체리듬에 맞춰 자라고 행복의 싹을 틔우고, 어여쁜 꽃 피우고, 튼실한 열매 맺고 다시 자라길 계속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그 수많은 꽃 중에 인간을 위해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다만 귀찮은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들은 바라본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숲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 우리가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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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골무꽃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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