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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 곽재구 ‘밤 편지-하동행’과 바스티나 ‘바닷가 산책’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곽재구 시인의 시를 따라서 구례구역에 내려 섬진강을 따라서 봉숭아꽃 피는 마을을 찾거나, 아니면 남해의 바닷가 해변을 그림처럼 옷장에서 꺼낸 흰색 드레스를 갖춰 입고 산책을 해보는 그런 여름휴가는 또 어떠한가? 하물며 코로나로 집에서 그림을 감상하면서, 켈리나 예쁜 손글씨로 시의 전문을 모처럼 밤의 편지를 쓰듯이, 그대로 베끼는 것도 어쩌면 나의 아름다운 내면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과정이 됨에는 틀림없다

이진우 기자

기사입력 : 2021-07-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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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편지―하동행 / 곽재구

늦은 밤

구례구역 앞을 흐르는


섬진강변을 걸었습니다

착한 산마을들이

소울음빛 꿈을 꾸는 동안

지리산 능선을 걸어 내려온 별들이

하동으로 가는 물길 위에

제 몸을 눕혔습니다

오랫동안

세상은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압과 고통 또한 어두운 밤길과 같아서

날이 새면 봉숭아꽃 피는 마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 아직 스무 살 첫 입맞춤의 추억

잊지 않았습니다

폭염 아래 맨발로 걷고 또 걸어

눈부신 바다에 이르렀을 때

무릎 꺾고 뜨겁게 껴안은

당신의 숨소리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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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나 ‘바닷가 산책’,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스페인, 소로야미술관.

책에 실린 그림에 올 여름도 마음을 빼앗겼다. 칠월, 늦은 밤이었다. 날은 중복이었다. 쉽게 잠들지 못했다. 무더위가 원인이었다. 두 대의 선풍기에서 냉기는 차츰 잦아들고 이내 열기로 바뀌고 있었다. 하여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다. 안방 서가를 이리저리 뒤적이다, 손 에 잡힌 것이 한 권의 낡은 시집이었다. 시인은 곽재구(郭在九, 1954~ ), 시집 제목은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 1999년)이다. 이 시집을 펼치면 시가 앞서 나온다. 까맣게 잊고, 나 살았다. 어느 주점 간판 이름을 내가 시에서 가져와 ‘날이 새면 봉숭아꽃 피는 마을’로 지어준 것을.

폭염이 절정에 치닫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양반가 담장 위로는 능소화가 보이고 낮은 농가의 울타리 밑에서는 봉숭아꽃이 화들짝 무더기로 피어나 보인다. 다르게는 ‘봉선화(鳳仙花)’라고도 말한다. 꽃말로는 ‘부귀’가 등장하고, 또 ‘어린 아이 같은 마음씨’라는 설명이 붙는다. 꽃의 색깔은 빨강, 보라, 흰색이 대표적인데, 시에서 가리키는 봉숭아마을엔 ‘흰 빛깔’의 봉선화가 <바닷가 산책>의 두 여인처럼 예쁘게 원피스를 입고 아침 산책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의 화자를 껴안고서 반겨줄 것만 같다.

그림처럼, 바닷가 산책

시처럼, 강변 걷기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긴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프랑스 철학자 루소가 한 말이다. 이에 <밤 편지>의 화자는 즉각 행동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을 맞이해 “늦은 밤/ 구례구역 앞”에 도착한다. 이윽고 섬진강 길을 따라서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명상에 잠긴, 응어리진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듬으면서 생각을 시로 발전시킨다. 적어낸다. 산책하는 첫발을 디디면서 “소울음빛 꿈을 꾸는 동안/ 지리산 능선을 걸어 내려온 별들”을 수없이 발견하는가 하면, 이윽고 걷는 중에도 “하동으로 가는 물길 위에/ 제 몸을 눕”혀 잠을 청하는 산자락의 지혜를 몸소 배우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화자는 “오랫동안/ 세상은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하면서 불쑥 내지른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막론하고 관계에서 “억압과 고통”의 “어두운 밤길”을 느닷없이 만나게 마련이다. 해마다 우리에게 닥치는 폭염처럼, 그것은 몹시 짜증스럽기도 하고 끝내는 불면하는 밤으로 동거를 강요한다.

날이 새면 봉숭아꽃 피는 마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두 줄의 시가 전문에서 무엇보다 핵심이다. 봉숭아꽃 피는 마을로 화자가 찾아가는 여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추측하건대 “사랑하는 이여”의 정체성은 봉숭아꽃 피는 마을과 스토리에서 연관을 맺는다. 상관이 있어서다. 그렇기에 애인(사랑하는 이)은 봉숭아꽃을 닮은 여인인 것을, 첫사랑인 것을 쉽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다. 그 여인은 화자의 나이 “아직 스무 살” 때의 만남이었고 잊지 못할 “첫 입맞춤의 추억”으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이성의 관계가 분명하다.

시를 읽으면서, 그 여인의 모습을 나는 상상해봤다. 화자가 구례구역에서 시작한 걷기를 통해 봉숭아꽃 피는 마을을 방문하고, 폭염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이용하여 “폭염 아래 맨발로 걷고 또 걸어/ 눈부신 바다”가 보이는 남해 바닷가로 산책을 굳이 나서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아마도 지난 옛사랑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 대한 집요한 갈증과 애착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서 화자는 걷고 또 걷는 것이다. 걸어서 바다까지. 그곳으로 기어이 가고자 한 것이다. 화자는 지금, <바닷가의 산책>이란 그림 속의 여인처럼 자기가 놓친 첫사랑, 흰 빛깔의 그 순수함, 즉 백지의 ‘어린 아이 같은 마음씨’를 다시 찾아 나선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란, 회복 탄력성을 전적으로 위함이다. 그게 곽재구의 다른 시집 <사평역에서>, <와온 바다>, <꽃으로 엮은 방패> 등에 독자가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해바라기로 서 해마다 기웃대는 이유가 되지 싶다.

아무튼 기차역(驛), 꽃, 바다, 여인, 밤길, 산책, 사랑 등의 낱말이 곽재구의 시에서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생각의 정원을 가꾼다. 명상의 그늘을 만들어준다. 독자로 하여금 낱말에 끼어들어 시와 유유히 산책하도록 안내한다. 다시 이 여름에, 나는 하동에 갈 것이다. 시와 산책하는 시간을 통해서 오랫동안 밤 편지를 섬진강변에다 쓸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깥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러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한정원 <시와 산책>, 25쪽 참조)

어쨌든 책을 만나고 돌아온, 아니면 산책을 막 끝내고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을 자세히 보라. ‘그(그녀)’의 눈빛을 살피자면 이상할 만치 빛나서 퍽 아름답게 보인다. 그림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는, 안경숙 작가의 <삶이 그림을 만날 때>(휴앤스토리, 2018년)에서 나는 독자로서 처음, <바닷가 산책>이란 그림을 마주쳤다. 아무튼 안경숙의 내면이 돋보이고 짐작되는 설명은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유난히 바다 풍경을 많이 그린 스페인 화가 소로야는 빛의 대가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바닷가 산책>을 보세요. 햇빛이 여인들의 새하얀 드레스에 쏟아져 눈부십니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푸른 바다. 그와 대비를 이루는 불그스름한 모래사장에도 빛이 쏟아집니다. 이 그림에서도 화가의 탁월한 빛의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두 여인은 (중략) 실제로는 소로야의 부인과 큰딸이라고 합니다만 뒤에서 걷는 여인의 얼굴이 베일에 가려진 탓에 나이를 가늠하기는 좀 어렵지요? 가족이든 친구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넘실거리는 바다의 포말에 일상을 잠시 실어 보내고 둘이서 여유롭게 바닷가를 거닐어봐도 좋겠습니다. 저렇게 우아하게 차려 입고 부드러운 베일을 휘날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선을 걷다 보면 마음속에도 평화가 잔잔히 밀려오겠지요.

가끔 삶에 지친 기분이 들 때는 집 근처의 산책로를 걷곤 합니다. 복잡한 도시 속에도 잘 정비된 산책로가 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요. 하지만 무조건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걸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산책하다가 잠깐 쉬면서 책이라도 읽을 요량으로 수필집을 한 권 들고나가도 매번 그냥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의 다채로운 빛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소리, 풋풋한 흙 냄새 등에 감각을 집중하다 보면 독서할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마는 겁니다. 가뜩이나 감각이 예민한 저로서는 때때로 잘 듣지 못하던 특이한 새소리만 나도 긴장할 때가 있지만 그런 긴장은 오히려 삶에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같은 책, 23~24쪽 참조)

다시 앞에 그림을 보자. 베일로 가리지 않고 모자를 벗은 여인이 화가의 부인이란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녀의 눈빛이 어떻게 보이는가. 눈빛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그곳이 어딘가. 아마도 남편인 화가 호아킨 소로아 이 바스티나(Joaquín Sorolla y Bastida, 1863~1923)가 두 여인과 바닷가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서 있는 위치와 시선이 겹치는 곳일 것이다. 그렇다. 남편은 베일과 모자를 눌러쓴 큰 딸이 위치한 자리와 가까운 화면 밖에서 붓을 들고 서 있을 것이다.

1909년 작품이다. 그럼에도 세련되고 우아하게 작품이 현실적으로 보이는 까닭의 이면에는 소품인 모자, 베일, 토시, 양산, 구두 등의 패션 디자인이 아름다우면서도 순결함을 한껏 고조시키는 새하얀 드레스와 잘 매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닷가의 물의 색깔 파랑은 우아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불그스름한 모래사장의 색조는 정열적인 스페인 사람의 기질을 암시하는 역할을 보여준다.

한눈에 보아도, 두 여인은 상당한 미인을 나타내는 실루엣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나는 화가의 부인 눈빛이 차갑고 이지적이면서도 남편을 향한 뜨거운 애정의 시선을 담은 눈빛, 즉 사랑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새하얀 드레스의 역사는 고작 200년 남짓하다. 부인은 검정색 구두를, 큰 딸은 흰색 구두를 신었다. 화가도 아버지이다. 딸에게 베일과 모자를 무더운 여름 폭염에도 쓰게 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처녀로서의 순결과 정숙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인의 모자는 왜 벗게 한 것이고 베일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화가의 자신감이지 싶다. 세상을 향해 있는 그대로 당당히 보여주고자 하는 열망과 사랑이 큰 딸과 달리,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화가를 응시하도록 주문했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한여름,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바다를 보면 바다 같이 받아주는 포용하려는 마음을 내면으로 담을 수 있다. 또한 산을 보면 산 같은 부드러움과 넉넉함의 자연의 눈빛을 담아서 나의 내면으로 가꾸고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서 걷다가 길가에 핀 들꽃을 보고도, “어머나~”라고 말할 줄 아는 그 마음은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시처럼 그림처럼 우리는 어느새 “나 아직 스무 살” 때를 먼 과거로만 잊고 살아가고 있다. 모자를 벗고, 베일을 내려놓고 단 한번이라도 남편을 향해 다정한 눈빛을 보낸 적이 있는 40대, 50대를 이미 경험했다면 당신은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이다. 이번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시는가?

곽재구 시인의 시를 따라서 구례구역에 내려 섬진강을 따라서 봉숭아꽃 피는 마을을 찾거나, 아니면 남해의 바닷가 해변을 그림처럼 옷장에서 꺼낸 흰색 드레스를 갖춰 입고 산책을 해보는 그런 여름휴가는 또 어떠한가?

하물며 코로나로 집에서 그림을 감상하면서, 켈리나 예쁜 손글씨로 시의 전문을 모처럼 밤의 편지를 쓰듯이, 그대로 베끼는 것도 어쩌면 나의 아름다운 내면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과정이 됨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따금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시와 그림을 만나는 산책은 자고로 수시로 해봐야 할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내 인생을 위하여~.

◆ 참고문헌

곽재구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열림원, 1999.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17.

안경숙 <삶이 그림을 만날 때>, 휴앤스토리, 2018.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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