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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국인에 대한 이해와 비즈니스 관계 - 역사·문화·종교를 바탕으로

기사입력 : 2021-07-30 00:00

박동빈 ㈜포아이티 대표



‘태국’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국왕, 불교의 나라, 관광의 나라, 미소의 나라, 한국전에 참전한 나라 등등 태국에 한 번쯤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단어는 쉽게 떠오를 것이다. 태국에 사업차 관심을 가지고 둘러봤다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나라, 방콕이나 파타야는 국제적 수준의 도시이고 인건비는 우리보다 싸지만 태국 주변국과 비교해보면 CLMV에서는 가장 고임금이며 쌀, 고무, 사탕수수 등은 세계 수출 1~2위를 다투고 일본과 유럽의 닭고기 시장 80% 이상을 공급하는 등 농축산물과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중공업은 뒤처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외국과 교역을 하거나 투자를 하려면 그 나라 국민의 성향과 상거래 관행을 잘 파악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그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인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태국인은 인류학적으로 따이(Tai)족으로 분류하는데 따이족은 중국 동남부, 베트남 북부, 라오스, 태국, 미얀마, 인도 동북부 등에 거주하며 농업 사회 중심으로 어업 및 산림업, 양잠을 하고 작은 마을 단위의 가족 중심 사회를 구성하였고 대체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고 반려자 선택을 자유롭게 했으며 친가와 외가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상속도 남녀 동등하게 이루어졌다. 조상신을 숭배하고 정령의 존재를 믿으며 간단, 편함, 소박한 생활 속에서 재미를 찾는 놀이문화가 발달한 민족이었다.

태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것은 1230~1240년대로 그 역사가 짧지만 그 전에 이미 원주민과 힌두 문명권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고 건국 초기부터 중국인들이 합류하게 된다. 또한 남쪽에서는 이슬람 문화권이 흘러 들어와 다민족 다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태국인 고유의 민족성을 형성하게 된다.

최초 왕국인 수코타이 시절에는 온건 군주 시대로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들에게 겸손하고 신중하며 사회적 신분에 맞는 언행을 하도록 가르쳤다. 아유타야 왕조는 힌두교 사상을 바탕으로 왕권을 신격화 하고 호족, 노예 등 계급사회를 형성하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 왕조인 랏따나꼬신 왕조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1935년부터 입헌 군주 국가가 되었고 외국 자본과 기술을 적극 받아드리며 중산층과 지식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유럽의 식민지 진출, 1, 2차 세계 대전 등에서도 지배 받은 적이 없이 독립국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불교의 윤회 사상과 힌두교의 다신교 사상은 토속 신앙과 융화되어 내세 지향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며 미래를 위한 노력과 저축, 도전과 개척 정신 등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이들에게 생소하다. 한편으로는 타인을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는 것을 금기시하며 자신의 자유를 중요시하게 된다.

태국의 기후는 태풍, 폭우나 지진 같은 재해가 거의 없고 연중 고온 다습하여 농산물이 많고 산림 자원이 풍부하다. 그래서 “얼어 죽는 사람은 있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낙천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고 자연에 의존하는 고산족 풍습이 베어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문명권인 중국과 인도 문화 영향으로 태국인들은 가족 중심 사회이며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 결정이 느릴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인류학자 John Embree 박사가 ‘태국 사회의 구조’라는 책에서 태국인의 특성을 요약한 것을 추려보면 1) 억지로 하는 것을 싫어하고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주의가 강하며, 2)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하는 것을 좋아하고 협동심이 부족하며, 3) 당장의 문제만 생각하고 장기적인 계획 수립이 부족하다, 4) 그러나 신축성 있게 주변에 잘 적응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안분지족(쾀 퍼피 양), 온정주의(남 짜이), 사양지심(끄랭짜이)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국인과의 비즈니스 관계에서 우리의 상식과 관행, 예의, 가치 기준과는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 우리가 꼭 관심을 가져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

1. 개인적인 관계 정립이 매우 중요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식의 수평적인 인간 관계가 아니라 태국 식의 수직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수직 관계란 위 아래 사이로 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위와 세력으로 아래를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하고 아래는 위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관계다. 단순한 상하 관계로 노예처럼 다루거나 명령을 절대 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위 아래지만 상대방의 인격을 지켜주고 자존심을 인정해 준다. 태국인들 간에는 첫 상담에 서로의 수직관계 정탐이 우선이라고 한다. 내가 위인지 아래인지 재빨리 확인하고 그렇게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회사 입사 동기 간에도 며칠 내에 수직관계가 정립된다. 친한 동료 간에도 위아래가 확실하게 정립된다. 계급 사회와 권위 의식이 뚜렷한 태국인에게 외국인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힘들고 그들에겐 불편하다. 오히려 인맥도 나보다 좋고 지식도 나보다 더 풍부하고 경제적으로도 나보다 더 나아 보이며 품위가 있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이들에겐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비즈니스 대화가 가능하다. 나의 직책의 높낮이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책임자이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필요에 따라 약간의 권위적인 언행이 효과적일 수 있다.

상대방의 직책이나 사회적 인지도에 따라 때로는 내가 상대방을 태국식으로 위로 보면서 아래 입장에서 대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사전에 상대방과 어떤 관계를 정립할 것인지,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방법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밀당의 고수이다.

태국인은 천성이 느긋하며 의사결정이 느리다. 담당자이거나 책임자라도 서두르지 않으며 혼자 결정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관련 부서와 협의하고 상급자의 결심을 받아서 결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므로 상담 시 상대방에게 결정하라고 독촉하지 말아야 한다. 결심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고 그들의 결정 과정을 즐겨 지켜보며 느긋하게 기다리는게 좋다. 내 제품과 서비스와 거래 조건이 좋다면 저들도 서둘러 나를 찾아올 것이다. 다만 그런 결정을 하는 과정이나 단계가 우리보다는 복잡한 다단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느린 의사 결정 외에 경쟁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와 비교하며 밀당하는 것을 즐겨한다. 관공서나 대기업은 제도적으로 경쟁 입찰을 하지만 입찰 의무가 없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입찰이라는 절차가 중요하지 않다. 급하지 않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적당히 밀고 당기는 상담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회신을 늦게 하거나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일부러 천천히 주는 것은 되려 신용을 잃어버릴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최대한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상대방의 밀당을 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3. 미소에 속지 말라.

미국 Harvard 대학의 고고인류학 및 교육학 박사인 Henry Holmes 는 “태국인과 같이 일하기”라는 저서에서 태국인의 미소 뒤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있다고 하면서 1) 행복의 미소, 2) 친절을 나타내는 미소, 3) 존경의 미소, 4) 건성적인 미소, 5) 사악한 또는 놀리는 미소, 6) 포기하는 마음, 7) 슬픈 마음을 억제하는 미소, 8) 미안한 마음의 미소, 9)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미소, 10) 승리의 미소 또는 우리가 당장 알아차릴 수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말로 설명하기 거북하거나 상대방에게 부담주기 어려운 말은 이렇게 미소로 나타낸다. 미소를 받은 우리는 우리 식으로 좋게만 해석하는데 그들이 왜 그렇게 미소를 짓는지 그리고 미소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대인 관계나 사업 관계에서 큰 실수를 할 수 있다.

태국인은 체면을 중요시하며 외국인 상대방에게 부담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표면상 미소를 많이 짓는다. 그렇다고 해서 태국인과 상담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긍정도 부정도 미소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의 미소인지 파악해야 한다. 사업적으로 진심으로 동의하는 것인지 표정이 아니라 문언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떤 상담이든 중요한 내용을 문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기로 간단히 주고받은 내용이나 합의한 내용을 요약해서 서로 확인해 두는 것도 좋다. 미소나 표정만 보고 판단하면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KOTRA 방콕 무역관에서는 ‘당신이 이 안건에 동의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좋으냐’, ‘이렇게 합의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으냐’, ‘이 내용을 서류로 메모해서 서명해도 좋으냐’라며 하나씩 확인하여 상대방이 그렇다고 동의하면 지체없이 그 자리에서 서류를 만들어 서명을 받아두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4. Yes 와 No를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

태국어 중에 ‘끄랭짜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말로 번역하기 힘들지만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상대방이 불편해 하거나 곤란해 하거나 상대방을 어렵게 만드는 말과 행동을 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태국의 예법이다. 거래나 상담에서 ‘No’라는 말을 안 한다. 적당히 긍정적인 것처럼 대답하고 피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먼 거리를 출장와서 나름대로 준비한 제안을 열심히 하는데 그 자리에서 ‘No’라고 답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매모호한 말이지만 ‘No’라고 잘라서 말하지 않는다. 이를 긍정적인 표현이라 여기고 ‘Yes’라고 이해하면서 계약하자고 덤비면 ‘이 사람이 끄랭짜이를 모르는구나’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더 이상 대화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Yes’라는 표현을 할 때까지 끈기있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과정이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Yes’라고 답하면 바로 계약할 수 있을 것이다.

5. 정치, 종교, 왕실에 대한 언급은 피하라.

태국보다 오랜 역사, 태국보다 빠른 경제 성장, 자랑스러운 한류 영향 등으로 우리가 태국인을 얕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가 태국 역사보다 오래 됐다고 자랑하거나 태국 시민의 민주 운동 시위를 우리의 민주화 운동과 비교하는 것은 태국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왕실에 대해서는 태국인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좋다. 자칫 잘못하면 무시 당하거나 등 돌릴 수도 있다. 태국인은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몇 년 전 한태상공회의소에서 설문 조사한 “태국인 근로자가 보는 한국인 관리자의 장점”을 살펴보면 1) 열심히 일한다, 2)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3) 일 처리와 의사 결정이 빠르다, 4) 목표 의식이 있다, 5) 계획성 있게 일을 한다, 6) 책임감이 강하다고 한다. 이것이 태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장점이다. 우리가 이런 장점을 잘 살리면 태국인과의 사업관계에서 성공적인 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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