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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도종환 ‘그대 잘 가라’와 모네 ‘카미유의 임종’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그렇다. 아내는 늘 항상 언제나 살아 있을 때, 곁을 허락할 때가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아무나 다가오는 ‘옆’의 자리를 턱하니 차지하는 여편네로 전락하거나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대체로 어떤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진우 기자

기사입력 : 2021-08-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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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잘 가라 / 도종환

그대여 흘러 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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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카미유의 임종’,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설령 당신이 갖고 있는 책의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가의 책을 한 권 빼어들고 쓰다듬거나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펴서 눈에 띈 최초의 문장부터 읽어보라. 그리고 설사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책이 서가 어디에 꽂혀 있는가를 기억해두라. 그러면 책은 당신의 친구가 될 것이다.”

독서광으로 유명했던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다. 말이 좋아서 오래 전에 나는, 스테디셀러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시대의창, 2008년)에서 따로 뽑아 노트에 메모한 적이 있다.

“그대 잘 가라”라는 말,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월요일 아침. 내 서가에서 한 권의 시집을 빼들었다. 시집의 제목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랜덤하우스, 2007년)인데 표지 디자인에 등장하는 나무가 매화인지, 벚꽃인지 알 수 없으나 노란 보름달이 환히 보인다.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펴서 읽는데, ‘그대 잘 가라’라는 시에다 붙인 서양화가 송필용의 그림 한 점이 시 읽는 기쁨을 눈가에 오랫동안 전해준다.

가만가만 한 줄 한 줄을 짚으면서 낭송을 해봤다. 그런데 자꾸만 어긋난다. 시가 노래로 흥얼흥얼 읽혀져서다. 이게 당최 어찌 된 일인가. 아, 생각을 해보니 나도 모르게 정호승의 시에다 김광석이 노래하고 시인 백창우가 작곡했다는 그 유명한 ‘부치지 않은 편지’가 혼합되어 반복해서 변주가 된 것이다. 참고로 정호승의 시는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왜 나는 도종환의 시와 정호승의 시를 똑같은 제목 ‘그대 잘 가라’로 착각하면서 기억했던 것일까. 여하튼 시인 정호승은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비채, 2020년)에서 “가수 김광석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라고 하면서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르고 녹음한 노래의 노랫말이 내가 쓴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사실에 마음이 깊이 아려왔다”라고 쓴 바 있다. 그러면서 “시‘부치지 않은 편지’는 1987년 9월 30일에 발간된 내 세 번째 시집 <새벽편지>에 수록된” 거라고 고백했다. 아울러 “당시 우리 시대는 ‘박정희 유신시대’는 끝났으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군사독재정권이 연장된 어둠의 시대였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시의 화자가 말하는 ‘그대’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을 부르짖다 고문으로 치사한 고 ‘박종철 열사’를 가리켜서 말함이다.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 박종철 열사의 죽음 앞에서 시인은 펜을 들어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라면서 깊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처연하게 애도한 것이다. 어쨌거나 망자를 애도하는 시를 일러서 ‘도망시(悼亡詩)’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종한의 시 ‘그대 잘 가라’의 화자가 애도하는 ‘그대’가 누구일까. 처음엔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으나, 시작(詩作)의 발표 시기가 1988년인 점을 감안해야 되기 때문에 그건 아니다.

알다시피 도종환((都鍾煥, 1954~ ) 시인의 대표작은 ‘접시꽃 당신’이다. 이는 참고로 시집의 제목이 되었다. 엄청나게 책이 시장에서 팔렸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시인을 스타작가로 우뚝 세우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시에서 말한 당신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 사별한 부인(구수경, 1985년 암으로 사망)이 아니면 또 누구겠는가. 암 투병생활로 죽음을 앞둔 부인을 향한 순애보를 담은 이 시집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훔쳤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한다. 덕분에 300만부(추산)나 시집이 팔렸단다. 그러니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판매부수를 자랑할 만한 대표시집이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도종환 시의 본문에 등장하는 ‘곁’이란 시어는 울림이 제법 크다. 또 얼마나 탁월한 언어의 조탁(彫琢)인가. 그렇다. ‘곁’이란 ‘옆’이란 말이 차지하지 못하는 분수령의 거리감으로 ‘신성한 사랑의 힘’이 낱말의 함의로 비축되어 있는 듯하다.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예컨대 ‘그대’는 시적 화자의 ‘아내’로서 늘 항상 언제나 ‘곁’의 자리에 있었던 존재였다. 하지만, 곁을 내줬던 존재의 가치로서 ‘그대’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할 사정에 처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음을 절규한다. 그 절규의 진정성이란 이것에 있다.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아내가 병으로 죽지 않길 진정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말미에 등장하는 구절,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이란 표현에서 우리는 이미 이승에서 죽고 저승으로 가는 시인의 아내를 상상하며 “적막하게 불러보는” 화자와 동일화, 일체가 되는 시선으로 간격을 좁히게 된다. 감정이입이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툭, 하고 강가에 서면 내뱉게 되는 말! “그대/ 잘 가라”

그렇다. 아내는 늘 항상 언제나 살아 있을 때, 곁을 허락할 때가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아무나 다가오는 ‘옆’의 자리를 턱하니 차지하는 여편네로 전락하거나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대체로 어떤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심정으로, 1879년 마흔의 나이가 된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아내 카미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자 화폭에 덕지덕지 붓질을 했을 테다. 앞의 그림 <카미유의 임종>은 그래서 <그대 잘 가라>라는 나만의 제목을 따로 부여해서, 그림을 시와 함께 부부가 연인이 오랫동안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퍽 좋을 듯하다.

내가 ‘돌싱’이 된다는 것,

사별이냐 vs. 이혼인가


법적으로 배우자가 없는 상태를 일러서 우리는 흔히 ‘돌아온 싱글’이라고 부른다. 줄여서 ‘돌싱’이라고 명명한다. 모네와 도종환은 그 삶의 궤적(軌跡)이 상당히 비슷한 편이다. 아내가 병으로 죽은 것, 그리고 이혼이 아닌 사별한 처지라는 공통점이 겹친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엔가 졸지에 ‘돌싱’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공통점은 많다. 대표적으로 첫 번째 부인과 사별 후에 더욱더 인기가 높아진 점이 그렇고 부(富)를 잔뜩 거머쥐는 점이 예컨대 그러하다.

1991년. 도종환은 삼십대 중반 이후 재혼한다. 모네는 아내 카미유의 친구와 자연스레 동거부터 시작하다가 재혼에 성공한다. 이에 대해 3자의 갑론을박은 항상 구설수가 되어 뒤따른다. 사람마다 ‘재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견해도 서로 저마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김광우 작가의 <마네와 모네>(미술문화, 2017년)에는 <카미유의 임종>에 설명이 자세히 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미셸을 낳은 후 카미유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모네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미술품 수집가 에르네스 메에게 보낸 편지는 눈물겹다.

아내가 3월 17일에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만 돈이 없어 산모와 아이의 병원비조차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1878.3.30)

모네의 둘째 아들 미셸의 출생 등록 증인이 되어 준 마네가 이번에도 앞장서서 그를 도와주었다. 카미유는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거동하지도 못했다. 알리스가 사경을 헤매는 카미유를 간호했고 오슈데는 사업의 재기를 위해 주로 파리에서 지냈다. 카미유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1879년 9월 5일에 서른두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던 날 모네가 벨리오에게 보낸 편지는 카미유에 대한 애정을 말해준다.

가엾은 아내가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략) 불쌍한 아이들과 홀로 남은 저 자신을 발견하고 완전히 낙담한 상태입니다. 당신에게 또 하나 부탁드릴 일은 동봉하는 돈으로 일전에 제가 몽 드 피에테(공영 전당포)에 저당 잡힌 메달을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그 메달은 카미유가 지녔던 것 중에 유일하게 기념될 만한 것이라서 그녀가 떠나기 전에 목에 걸어주고 싶습니다. (1879.9.5)

<카미유의 임종>은 모네가 카미유의 시신을 그린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린 그림은 습작에 불과했지만 그가 아내의 시신을 그렸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다. 모네는 알리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퇴거당할 처지에 놓이자 풍경화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는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중략) 1879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1880년 1월 모네는 센 강의 정경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야외로 나갔는데 강 위로 얼음이 둥둥 떠다녔다. 그는 강가의 얼음에 구멍을 내고 이젤을 세운 후 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로 언 손을 녹여가며 빛에 따라 변화를 일으키는 강의 모습을 그렸다.
(같은 책, 208~210쪽 참조)

이 글을 통해서 나는 센 강의 정경을 캔버스에 붓질하는 모네의 가슴 깊은 곳에는 분명 아내 카미유를 그리워하는 절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강 위로 얼음이 되어서 둥둥 떠다니는 꼴로 보이면서 순간 오버랩이 되었다. 모네가 그린 <부빙, 베퇴유>를 보고서 느낀 내 생각과 감정이란 게 그러했다. 그러니까 도종환의 시를 빌리자면,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이란 구절이 꼭 모네가 표현한 얼음 덩어리처럼 다가온 것이다.

나는 아직 배우자 ‘사별’의 경험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이혼’의 경험을 했을 뿐. 사별한 돌싱과 이혼한 돌싱은 같은 ‘돌싱’이긴 하지만 ‘이혼’은 ‘내 탓’이고 ‘사별’은 ‘내 탓이 아니다’라는 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헤어지는 ‘그대’를 향한 말 한마디는 서로가 따스한 온기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정호승의 시처럼, 도종환의 시처럼 “그대 잘 가라”는 목소리에 ‘뜻’만을 실지 말고 ‘정’을 한가득 담아서 인사를 마지막으로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점에 우리는 참 인색한 편이다. 어쩌면 또 냉정한 면이 없진 않다. 그래서는 정말이지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몇 년이 되어야 재혼할 수 있는 거니?

그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MBN에서 하는 ‘돌싱글즈’라는 방송을 지켜본 적이 있다. ‘한 번 다녀와서 돌아온 싱글이 되었다’라는 뜻에서 ‘돌싱글즈’라는 방송명을 붙였을 테다. 1회차 방송분을 시청했다. 내가 본 것에는 ‘사별’은 없고, ‘이혼’한 경력을 가진 남녀가 화면을 차지했을 뿐이다. 얼마나 된 건가, 궁금해 보는데 1년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3년, 4년이 되었다는 얘기와 가장 오랜 된 싱글 남자는 9년이 되어서 지나가는 말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마디로 시청하기가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1년’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혼한지 1년 밖에 안 되었는데 또 연애와 재혼을 실은 하고 싶은 걸까?

딱히 ‘몇 년이 되어야 재혼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막상 대답이 궁색해진다. 그렇지만 1년은 좀 그렇다. 최소한 3년 이상은 지난 남녀가 등장해야 되는 게 아닐까. 이를 ‘꼰대’라고 말한다면 나는 인정하겠다. 그렇지만 ‘1년’에 대해서는 ‘겨우’라고 답하고 싶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참을성이란 것도 없이 인내심이란 것도 없이 턱하니 ‘이혼’을 결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옛시를 읽은 적이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여기에다 소개한다.

즉흥시 / 이청조

십오 년 전 달빛 아래 꽃밭에서

서로 함께 꽃 감상 시를 지었더랬지

이제 보니 꽃과 달은 그때와 똑같건만

어찌 지난날과 비슷한 감정이 생기랴


이청조(李淸照, 1084~1155)는 중국 송나라 때 유명한 여류시인을 말함이다. 그는 송사(宋詞)에 매우 능했다. 쉽게 말해서 ‘사(詞)’라는 것은 ‘시(詩)’와 좀 다르다. 이미 노래가 된 곡에다 시적인 노랫말을 붙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을 일러서 옛 사람들은 ‘전사(塡詞)’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서 ‘노랫말이 된 시’는 그냥 단순하게 시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호승의 수많은 시들은 노랫말이 이미 된 바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종환의 <그대 잘 가라>는 시 또한 백청우 곡의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노래 가락에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청조의 시를 한자 원문으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칠언절구 형식을 취했다. 모두 28자의 한자가 등장한다. 따라서 시는 ‘송사’가 아니고 ‘송시’로 봄이 마땅하다. 아직 노랫말이 되지 못한 도종환의 <그대 잘 가라>는 멋진 시처럼.

偶成 / 李淸照

十五年前花月底 (십오년전화월저)

相從會賦賞花詩 (상종회부상화시)

今看花月渾相似 (금간화월혼상사)

安得情懷似往時 (안득정회사왕시)

앞의 번역은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김준연 교수의 솜씨이다. 책에서 그대로 베꼈다. 시에 대한 감상을 김준연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이 시는 시인이 세상을 떠난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은 것이다. 이청조는 문학을 애호하는 사대부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시를 잘 짓는다는 칭찬을 들으며 성장했다. 방년(芳年) 18세 때 세 살 연상의 태학생(지금의 국립대학생)인 조명성(趙明誠)과 결혼했다. 이들 신혼부부의 아버지는 모두 당시 조정의 고위 관료여서 여러 하객들로부터 큰 축하를 받았다. 시인 부부는 이후 함께 금석학(金石學)을 연구하며 금실 좋게 20여 년을 지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들이 40대 중후반이 되었을 무렵 남편인 조명성이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면서 행복했던 부부의 삶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때 송나라도 전란에 휩싸이면서 시인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 나갔다. 이 시에는 달빛이 비치는 꽃밭을 거닐던 시인이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추모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꽃과 달 같은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남편과 함께 꽃을 감상하며 시를 지었던 옛 추억과 그때의 감정은 되돌릴 길이 없다. (김준연 <시인, 사랑을 노래하다>, 78쪽 참조)

그렇다. 자연은 늘 그대로다. 단지 사람의 감정만이 변할 뿐이다. ‘이혼한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함께 한 시간’을 살펴봐야 한다. 얼마나 부부로서 오랫동안 살았는가, 하는 시각에서 ‘돌싱’을 바라본다면 좀 더 실패가 적어지는 연애와 결혼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연애만 하시라. 그러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을 때가 오면 결혼하는 것은 어떠하신가?

8월, 이 여름에 불쑥 후배가 집으로 찾아왔을 때, 내가 해준 조언의 내용은 이랬다. 이청조의 시에다 덧붙일 다섯 글자가 있다. 모두 눈치 채고 짐작했을 테다. 그렇다. “그대 잘 가라”는 말, 그것이다. 우리는 이혼이나 사별을 하면서 다섯 글자도 채우지 못한 부치지 않은 편지 때문에 계속해서 가슴에 파랗게 멍이 드는 게다. 그래서 헤어지는 ‘그대’에게 반드시 “그대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넬 줄 알아야 한다. 다시 지금, 당신이 사랑을 시작하려고 맘을 먹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시와 그림을 보는 시간이라도 짬짬이 가지면서.

◆ 참고문헌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실천문학사, 2005.

김삼웅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문학과지성사, 2017.

도종환 시화전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으랴>, 랜덤하우스, 2007.

정호승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비채, 2020.

김광우 <마네와 모네>, 미술문화, 2017.

김재혁 외 <시인, 사랑을 노래하다>,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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