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석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의 '두 얼굴'

산업계, 중대재해 문제 공감하나 '과다처벌 입법' 등 우려...보완입법 호소
노동계, 반쪽짜리 중대재해법...감독행정 개혁과 사업주 강력처벌 요청
중대재해법 앞두고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등 산업재해 예방 총력
사망자 많은 5인 미만 소기업 '사각지대'...확대할 경우 '폐업사태' 우려도

조하니 기자

기사입력 : 2021-10-13 11:20

center
서울 영등포구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6월 시민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참사’ 이후에도 산업현장에서 크고 작은 인명사상 재해가 끊이질 알고 있는 가운데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놓고 찬반입장이 여전히 첨예하게 갈려 향후 법 집행에서 많은 갈등이 예상된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직업성 질병자 범위 ▲공중이용시설의 범위 ▲안전·보건 확보 의무 등 내용을 담은 시행령으로 확정돼 심의·의결됐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은 내년 1월 27일 정식 발효된다.

주요 내용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1명 이상 사망의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물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부상과 질병 재해에도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을, ‘법인과 기관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각각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입법 과정부터 법안 공포까지 줄곧 산업계는 중대재해에 따른 인명손상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다처벌 입법'이고, '현장과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반면에 노동계와 국회 일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선진국과 비교해 ‘산업재해 왕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기업 자율이 아닌 ‘입법 강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입법 과정에서 적용 범위를 종사자 50인 이상 기업으로 완화 수정하는 바람에 입법 효과가 저하될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center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합회가 지난 7일 50인 이상 기업 314개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준비 실태조사'에서 법 시행일까지 의무준수 가능 여부에 대한 응답. 자료=중소기업중앙회

◇ 대기업-중소기업 약 80% “내년 1월 시행 전 안전·보건의무 준수 어렵다…부담 가중
” 호소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7일 50인 이상 기업 314개를 대상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준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전체 응답 기업의 66.5%, 5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 77.3%가 시행령에 규정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내년 1월 27일 법 시행일까지 준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명확하지 않은 의무 내용 탓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업들 응답이 가장 많았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의무범위가 과도하게 넓어 경영자 부담 가중’(61.5%, 중복응답)을 꼽았다. 이어 ▲종사자 과실로 재해가 발생해도 처벌 가능(52.2%) ▲형벌수준이 과도해 처벌 불안감 심각(43.3%) 등을 지적했다.

또한 전체 응답기업의 74.2%(대기업 80.0%, 중소기업 74.7%)가 공통으로 중대재해법 중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은 ‘고의·중과실이 없는 산업재해의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규정 마련’이라고 요구했다. 대기업은 ‘경영책임자 의무와 원청의 책임범위 구체화(52.3%)’를, 중소기업은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수위 완화(37.3%)’를 개선사항으로 희망했다.

산업계는 내년 1월 중대재해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개정 가능성을 살펴보면서 대책을 강구 중이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내년 1월 중대재해 시행 전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팀장은 “다만 현실화 되기 어려운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법을 준수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사업장관리 가이드북’을 만들어 회원사에 배포하고, 오는 12월까지 사업자 설명회나 교육을 연달아 개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처벌법에도 올해 산업재해 사망자 수, 지난해와 차이 없어…노동계 “반쪽짜리 법 전락” 비난

이같은 기업계의 법 시행 거부감 입장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산업재해 감소의 개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서 올들어 산업재해 사고 사망노동자 수는 지난 9월 24일 기준 648명으로 집계돼 지난해 9월 기준 산재사고 사망자 수(660명)와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 2019년 855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900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882명으로 다시 늘어나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전년대비 20% 이상 줄이겠다는 정부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발표하고, “노동자·시민의 죽음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반쪽 짜리로 전락했다”고 맹비난했다.

민노총은 “법령 점검의 민간위탁 금지, 직업성 질병의 전면 적용, 광주 학동 붕괴를 적용하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개정과 정부 감독행정의 전면 개혁, 산업안전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업주의 강력 처벌 등을 요구했다.

center
전체기업이 지적한 중대재해법 중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 표. 자료=중소기업중앙회

◇건설사 산재승인 증가 속 기업들 첨단IT기술 동원 안전대책 마련 분주

산업계와 노동계의 중대재해처벌법 입장이 확연히 대립하는 가운데 정기국회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입법안을 통과시켰던 정치권은 여야 구분 없이 우리나라 중대재해의 민낯을 드러내는 국감자료를 잇따라 공개해 중대재해처벌법의 '두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감자료에서 건설업이 중대재해 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직종으로 찍혔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에게 제출한 ‘2017~2021년 5월까지 재해유형별 산업재해 현황’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집계된 산업재해자 총 39만 6696명 중 건설업의 산재사망자 수는 전체 4059명의 과반수를 넘는 2071명(51%)으로 제조업의 2.3배(910명, 22.4%), 운수·창고와 통신업의 6.7배(311명, 7.7%)를 기록했다.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건설 현장 사고는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구하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건설사 소속 근로자들의 산재승인이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국민의 힘 박성민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국내 상위 20대 건설사들의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지난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해당기간에 20대 건설사들의 산재 신청 건수는 총 9149건에 근로복지공단의 승인 건수는 모두 8233건(승인율 89.9%)이었다.

20대 건설사 가운데 삼성물산이 705건 신청 중 584건(82.8%)이 인정돼 산재 승인율이 가장 낮았다. 이어 ▲삼성엔지니어링 83.8% ▲태영건설 86.4% ▲SK에코플랜트 86.5% ▲포스코건설 87.0% 순으로 낮은 승인율을 보였다.

구체적인 산재 승인 현황은 같은 기간에 사망자 189명, 부상자 8044명이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건설사는 현대건설(23명)이었고, 부상자로 범위를 넓히면 ▲GS건설(1476건) ▲대우건설(960건) ▲대림산업(681건) 순이다.

잇따른 산업재해의 이슈화에 주요 건설사들도 산재예방 능력과 안전보건 강화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각 건설사들은 형사처벌에 따른 기업 이미지 하락과 경영 손실을 방지하고자 법 시행 전 관련 조직 확대, 안전 기술 도입 등 재해예방 대책 구현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은 지난 3월부터 국내외 전체 84개 현장에서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작업중지권은 근로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시키는 권리다. 또한 VR(가상현실)을 활용한 장비 안전훈련 프로그램 ‘스마티’를 건설 현장에 도입해 안전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현대건설도 건설 현장에 스마트기술을 도입해 안전관리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같은 신기술로 현장 위험요소를 미리 감지·제거해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한다. 특히 현대건설은 근로자 안전모에 스마트 태그를 부착하고 동선을 확인해 현장 안전관리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GS건설은 지난해부터 미국 로봇공학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팟’을 국내 최초로 건설 현장에 도입했다. 현재 스팟에 LiDAR(라이다:레이저를 이용한 대기현상 관측장치), 360도 카메라, IoT센서 등 첨단장비를 설치해 현장 실증시험을 하고 있다. 시험을 거친 스팟은 건설공사장에 투입돼 위험구간의 유해가스 감지, 열화상 감지로 산재예방 안전관리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지난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국내 건설사 가운데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기업이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핵심가치인 ‘안전이 경영의 제1원칙’을 바탕으로 선제적 안전보건 활동과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운용으로 안전관리에 최우선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도 산재예방 노력 불구 '지역건축안전센터 신설' 더디고 설치기준도 광범위 '실효성' 논란

정부도 건축현장 안전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건축법에 따라 인구 50만 이상 도시는 내년까지 지역건축안전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지역건축안전센터는 지자체의 건축행정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개선해 건축인·허가, 현장점검 등 기술 부문을 검토할 계획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시·도(세종 제외)를 포함한 총 40개 지자체 가운데 올해 7월 기준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를 완료한 곳은 16개(40%)에 불과했다.

설치 기준이 인구 50만 명으로 한정되면서 지역안전센터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참사’가 발생한 광주 동구는 지방 대도시의 기초단체이지만 인구 수가 10만 명 수준으로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의무 대상이 아니다.

조오섭 의원은 "지방의 여건은 감안하지 않고 인구 기준으로만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를 정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 뒤 "광주 학동 참사로 지방의 건축안전 사고에 경각심이 높아졌다. 인접한 2개 기초단체를 묶어서 설치하는 방식 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산재 사망자 24% 차지 영세소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사각지대'…업계는 "확대 적용 시 폐업 불가피" 호소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영세사업장에 안전관리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산재 사망은 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빠져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 수 500명을 감안하면 전체 2062명의 24%를 차지했다.

이수진 의원은 “내년 1월부터 법이 발효되는 만큼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조사·분석해 산재 사망이 다수 발생하는 5인 미만 사업장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계는 최악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경영 중단’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한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대기업은 별도 관리자가 있어 중대재해법 시행 후 문제 발생 시 즉각 경영을 중단하지 않지만, 중소기업은 관리자 99%가 사업주인 특성상 최악의 경우에 폐업을 피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양 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 재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악 상황을 대비해 현재 ‘1년 이상 징역’으로 설정된 하한형 규정을 상한형으로 바꿀 수 있도록 처벌수위 완화를 정부와 국회에 건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인들이 어려운 사업환경에도 정상경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면책 규정’을 포함시키는 내용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조하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anicho94@g-enews.com

네덜란드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