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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심취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22)] 긍정심리학의 선구자, 칙센미하이 교수님의 별세에 즈음하여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1-11-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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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타계한 긍정심리학의 거장 미하이 칙센미하이 교수.
미국 심리학회가 발행하는 '미국 심리학자(American Psychologist)'는 세계의 거의 모든 심리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나 소속된 분과학회에 관계없이 읽는 학술잡지이다. 이 저널은 광범위한 관심사에 높은 영향을 미치는 기사를 시기적절하게 게재한다. 퇴임하는 미국 심리학회장의 퇴임사와 새로 취임하는 학회장의 취임사 등이 실리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미국과 전 세계 심리학계의 연구 방향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 1월 특집호의 주제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특집호의 주제는 '행복, 탁월성, 그리고 최적의 인간 기능에 관한 특집(Special Issue on Happiness, Excellence, and Optimal Human Functioning)'이었다. 줄여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라고 불리는 이 주제에 관해 소개하는 글을 쓴 두 분의 심리학자는 셀리그먼(Martin Seligman)과 미하이 칙센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이었다. 이 두 분의 심리학자들이 이끈 긍정심리학은 21세기 심리학의 방향을 바꾸어놓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 두 분의 심리학자 중 미하이 칙센미하이 교수가 지난 10월 20일 저녁 87세로 별세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몰입(Flow)'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그는 유대계 헝가리(Hungary)인으로 1934년 이탈리아의 파우메(Fiume)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이탈리아 주재 헝가리 영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헝가리에 살고 있는 친인척들의 반 이상이 소련의 헝가리 침공으로 죽는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로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족이 경영하는 음식점 일을 돕는 한편 졸업 이후에는 사진사, 여행가이드 일을 하기도 하였다.

1952년 겨울 18살 때, 스위스의 한 스키장에서 눈도 녹고 여행경비도 떨어져 아르바이트를 위해 취리히(Zurich)로 떠나던 그의 눈에 지방 문화센터에서 한 심리학자가 무료강연을 한다는 안내문을 발견하고 참석하였다. 그 강사가 바로 유명한 칼 융(Carl Jung)이었다. 이 강연에 매료된 그는 융과 프로이트(S. Freud)의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결국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였다. 22살에 미국으로 이민하여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시카고대학교에 진학하였다. 1965년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를 수여받고 40년 동안 모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 후 LA 근교에 있는 클레어몬트(Claremont) 대학교로 옮겨 경영대학 교수 및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인간의 삶을 좀 더 창의적이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한 분야를 연구해 왔다. 그와 친인척은 불행한 사건을 겪었지만, 편견이나 공격성 등 인간의 부정적인 특성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삶을 증진시키는 요인들과 여건에 대해 연구했다는 것이 그를 긍정심리학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칙센미하이교수, 전 세계 심리학계 연구 방향에 큰 영향

칙센미하이가 처음에 관심을 가진 분야는 '창조성(creativity)'이었다. 그 후 창조적인 사람은 예외 없이 자신의 작업에 깊이 몰두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몰입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그에 따르면 몰입(flow)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즉,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심취하여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몰입은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을 차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어느 한 곳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하는 일에 무아지경으로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자극에 신경 쓸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연구한 암벽등반가나 외과의사 그리고 체스선수들은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했다. 일단 몰입을 하면 몇 시간이 한 순간처럼 짧게 느껴진다. 우리도 진짜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간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몰입 대상과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가지며 자아와 주위 세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

몰입의 이런 특징 때문에 자주 몰입에 빠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창의적이고 행복한 삶에 대한 관심이 큰 그는 사람들이 몰입에 빠지는 조건과 요인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하였다. 몰입 상태에는 평소와는 다른 심리적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 몰입 상태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과업에 대한 강렬한 주의집중이 일어난다. 이런 주의집중은 내재적 동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둘째, 몰입 상태에서는 행위와 인식의 융합이 일어난다. 몰입을 다른 말로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고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아의식이 사라진다.

셋째, 몰입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이 바뀐다. 보통 때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 내에 벌어지는 것처럼 느낀다. 넷째, 몰입 상태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은 강력한 통제감을 느낀다. 심리적 에너지를 거의 현재 하고 있는 활동에만 소비하며 주위가 분산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 없이 통제감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몰입 경험은 자기-충족적(autotelic) 속성이 있다. 그 활동 자체가 재미있거나 보람 있기 때문에 외부의 보상이나 처벌이 없더라도 계속 하는 특징이 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인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하나는 '도전수준(challenge level)'이고 또 하나는 '기술수준(skill level)'이다. 일반적으로 '과제난이도(課題難易度)'라고 부르기도 하는 도전수준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어려움 정도를 나타낸다. 과제난이도가 높으면 과제가 요구하는 기술수준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기술수준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나 기술의 정도를 말한다. 몰입 경험은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이 조화를 이룰 때 발생한다. 경제에서 물건의 값은 수요와 공급의 교차점에서 형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한 사람의 기술수준이 5라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이 도전수준이 7이나 8인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과제 해결의 즐거움보다 '불안(anxiety)'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도전수준이 2나 3의 과제가 주어진다면 과제를 해결하는데 흥미를 느끼기보다 지루하고 '권태(boredom)'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도전수준이 5나 6인 과제를 주면, 과제 해결에 열중하고 해결한 후 큰 만족을 느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전수준이 높고 낮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수준과의 조화 여부가 몰입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이 모두 높은 상태에서 조화가 이루어질 때 몰입경험의 강도가 강해진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주의집중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21세기 심리학 방향 바꾸는 데 크게 기여

칙센미하이 교수는 후에 더욱 정교한 모델을 만들었다.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의 평균을 기점으로 도전수준보다 기술수준이 조금 낮은 경우에는 '각성', 더 낮으면 '불안', 더 낮으면 '걱정' 상태가 된다. 만약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이 둘 다 낮으면 '무관심' 상태가 된다. 도전수준보다 기술수준이 조금 낮으면 '통제', 그리고 더 낮으면 '휴식' 상태가 된다. 만약 도전수준이 기술수준보다 현저히 낮으면 '권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이 둘 다 평균이상으로 높은 때 진정한 '몰입'이 일어난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최적(最適)의 상태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도전수준보다 기술수준이 현저히 높을 경우에는 스스로 도전수준을 높여 몰입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면, 경험이 많은 사람이 초보자와 장기를 둘 때는 차와 포를 떼고 경기를 한다. 그래야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이 조화를 이루어 몰입 경험을 할 최적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전수준과 기술수준을 맞출 수 있는 자율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원리는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과 회사 경영에도 적용된다. 그가 말년에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한 이유이다.

그의 연구업적은 많은 저서로 출간되었으며, 학계 뿐 아니라 기업체 등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의 연구는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뉴스위크(Newsweek)』 등의 언론 매체에 소개되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저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1999년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이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후, 그의 저서 여러 권이 번역되었다.

※ 미하이 칙센미하이 교수님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님입니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별세에 즈음하여 부족한 제자가 스승님의 학문적 업적을 조금이나마 소개하는 칼럼을 쓰는 것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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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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