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세관 3층 아시아나항공 열린 조종사 노동조합(AHPU) 사무실에서 만난 곽상기 노조 위원장은 공정위가 국익을 감안해 전향적으로 사안을 대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과 기업 결합을 발표한 뒤 후속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양사 합병은 국적 항공사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대한항공은 물론 범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결합심사를 담당하는 공정위가 통합법인이 시장 점유율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독과점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공정위는 통합법인의 운수권(다른 나라 공항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과 슬롯(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조건부 승인’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를 통해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 사업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곽 위원장은 이에 대해 “공정위의 결정은 항공산업이 가진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것”이라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운수권‧슬롯 줄이면 외항사에 더 이익”
그는 “항공업은 국제적으로 한번 밀리면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산업이다”면서, ““중동 항공사는 정부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는다. 예를 들어 중동 항공사가 띄운 항공기에 1명이 타든 100명이 타든 관계없이 나라에서 비행기값을 지원한다. 이렇게 되면 중동 항공사는 100만 원짜리 항공기 값을 10만 원에 팔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국내 항공사들은 경쟁력이 없어 노선 운행을 포기하게 되고 나중에 시장을 장악한 중동 항공사가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도 국제법상 제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곽 위원장은 “대만 TMSC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1위 기업인데 우리는 이 회사를 독과점으로 보지만 세계에서 보는 시각은 경쟁률 1위다. 공정위가 이런 관점에서 항공산업을 봐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곽 위원장은 “양사의 점유율이 높은 노선의 운수권과 슬롯을 회수해도 그것을 국내 저가항공사(LCC)가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혜택은 외항사에 돌아간다”면서, “실제로 LCC는 대형항공사(FSC)와 달리 A320과 B737 같은 중·단거리 비행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업무 중복 인력 1000명 실직 불가피
“운수권과 슬롯이 줄면 결국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그는 “비행기가 10번 갈 걸 5번만 가는 셈인데 그 인원만큼은 필요가 없어진다. 회사 입장에서 그분들 인건비를 지불하면서 계속 데리고 있으려고 할지 의문이다”고 우려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친 임직원 수는 약 2만 6000명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양사 통합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간접 인력이 1000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 입장대로 승인이 이뤄질 경우 1000여명의 인력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곽 위원장은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이 약속한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 없이 기업 결합을 승인해야 한다”면서, “통합 법인이 산업경쟁력이 켜지면 운용해야 할 항공기가 더 많아지기 떄문에 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외교 지원 필요…필수신고국가 4곳 승인 남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 경쟁당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으나 역시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곽 위원장은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외교력을 좀 더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 비췄다.
곽 위원장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 필수 신고 국가들에게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힘만으로는 어렵다, 특히, 중국 같은 국가는 자국 항공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외교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1월 9개 필수신고 국가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고 이중 베트남·터키·대만·태국에서만 승인을 받았다.
그는 “공정위가 이 사안을 항공산업 경쟁력과 합병 이후 구조조정을 생각해서라도 아무 조건 없이 심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류으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frindb@g-enews.com